기분에 잠식되지 않는 방법
프리랜서 생활 10년 차다. 회사를 뒤로하고 당당히 걸어 나오던 때, 나는 뭐든 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종일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미래만 걱정하는 신세였다. 회사 밖에서의 나는 나조차도 종잡을 수 없었다.
어떤 날은 괜찮다가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했고, 그냥 내가 미웠다. 그런 날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고,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깎아내렸다. 며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우연한 계기로 조금씩 에너지가 차오를 때도 있었는데, 마음의 불씨를 태우다가도 또 별다른 이유 없이 의지가 꺾였다.
하지만 직장생활 하던 때와 비교하면 일상은 매우 평온했다. 상사 눈치 볼 일도 없고,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와 부딪힐 일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회사 밖에 나오니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타인과 함께할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와 잘 지내는 건 타인과 잘 지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프리랜서로서 나 자신과 징글징글하게 긴 시간을 보내며 다투고 화해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결국 나의 기분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 혼자 있을 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고, 타인과 함께할 때 자기중심을 지킬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아마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요소는 하루에만 수천 가지는 될 거다. 기분에 지배당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불친절하게 대하고 삶을 불안하게 느끼지만, 기분을 관리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다정하게 대하고 삶의 코어를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Balance
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 혼자 있을 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고, 타인과 함께할 때 자기중심을 지킬 수 있다.
작고 소중한 행복을 늘려가기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일에서든, 관계에서든 끊임없이 내 역할과 능력을 보여주고 확인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계속해서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놓아야 할 것 같다. 그걸 누군가의 칭찬으로 확인받으면 편안해진다.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에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을 잔뜩 떠안다 보면 어깨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된다. 결국 그 무게가 버거워지는 순간이 온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 보려고 자기에게 소중한 것부터 먼저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위한 것이나 책임져야 하는 것은 끝까지 짊어지면서도 나를 위한 것은 비교적 쉽게 내려놓는다. 당장은 짊어진 무게를 덜어내는 것 같지만, 그게 곧 삶의 부력을 없애는 일이라는 걸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말한다.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오후 햇빛에 나뭇잎 그림자가 진 것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면 냄새가 풍기는 새로 산 흰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는 것’ 이것들은 아마 그의 삶의 무게를 줄여주는 부력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더 가볍고 유연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도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땐 사소하면서도 소중한 것들에 집중한다. 밤늦게 조명 하나 켜놓고 음악 들으며 맥주 마시기, 하천 따라 자전거 타기, 가장 친한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떨기, 책 읽다 발견한 마음에 드는 문장 필사하기. 사실 지친 삶을 일으켜 세우는 건 고작 이런 작은 것들이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인생을 그 자체로 값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작고 소중한 행복에서 나온다.
Small Happiness
누구에게나 완벽한 선택은 없지만 기분 좋은 선택은 있다. 기분 좋은 선택을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삶의 방향키를 잡는 것이 보다 즐거워진다.
남들이 아닌 나에게 솔직한 선택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어릴 땐 어른들에게 참 많이 혼이 났다. 요즘은 왼손을 쓰는 것이 옛날보다 관대해졌지만, 왼손을 쓰면 훨씬 편한데도 어른들은 내게 오른손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강요했다.
살아보니 하기 싫지만, 타인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에는 늘 내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따랐다. 일이 잘 풀리면 그 사람 덕분이고 잘 안되면 내 탓으로 돌아왔다. 상대는 흡족해하지만 정작 난 만족감은커녕 괴롭고 허탈해진다. 이런 마음을 잘 알기에, 상대와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나를 억압하는 불편을 선택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나에게 솔직한 선택이 뭔지를 고민하고 따르려고 한다.
무엇이 후회 없는 선택일지, 환영받거나 대세를 따르는 선택일지, 고민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완벽한 선택은 없지만 기분 좋은 선택은 있다. 기분 좋은 선택을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삶의 방향키를 잡는 것이 보다 즐거워진다.
그렇다면 강요받은 오른손잡이로 유년기를 보냈던 나는 완벽한 오른손잡이 어른이 됐을까? 굳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결과를 말해보자면, 상황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양손잡이가 됐다. 필기는 무조건 오른손이지만, 가위질은 무조건 왼손이다. 그게 가장 편하다. 더는 남을 만족시켜줄 선택이 아닌, 솔직하게 내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다.
부족한 나를 다정하게 받아들여 줄 것
7살 딸과 보드게임을 할 때면 게임의 승패가 갈릴 때쯤, 자기가 질 거란 생각에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매번 보드게임만 하면 자꾸 엉엉 울며 짜증 내는 아이를 보면 순간 화가 올라오지만, 도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본다. “결과보다 중요한 게 과정이야.
게임에서 졌어도 우리가 다 같이 즐거웠으면 되는 거 아닐까?” 물론 이 한마디로 진정되지 않으니, “이럴 거면 다음부턴 너랑 보드게임 안 할거야!”로 상황이 종료되곤 하지만.
그런데 어느 날, 아이의 이런 모습에서 딱 내 모습이 겹치는 게 아닌가. 나 역시 내 노력에 비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무척 힘들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 모든 걸 퍼부어 최선을 다했고, 그에 따른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 그랬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우울했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이게 반복되니 “아예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도, 실망도 없겠지”하는 마음이 슬며시 자리 잡았다. 이걸 깨닫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아이도 이런 마음을 갖길 원치 않으니까.
우리는 부족한 나를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부족하다.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살려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나를 자주 만나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다정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요리를 못하지만 가끔은 좋은 식재료로 나를 위한 요리를 한다. 운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최소 주 3회는 꼭 운동하고 몸을 체크한다. 혼자 경치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다. 여기에는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접해준다는 마음이 깔려있다.
나를 대접하다 보면 나에 대한 다정함도 쌓인다. “그래, 많이 힘들었겠다”, “느리지만 한 발짝 뗀 게 의미 있는 거야”, “이만큼 해낸 것도 참 대단해”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이 늘어나면 실패가 노력의 배신이 아니라 그저 노력의 과정으로 여겨지게 된다.
Equanimity
우리는 부족한 나를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부족하다.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살려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나를 자주 만나야 한다.
내 삶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기를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작은 반응에도 초조해하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돼, 내 삶에서 소중한 것들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바뀐 결정적인 한 방은 매일 아침 30분씩 산책을 한 것이었다. 지금도 산책하지 않는 날은 왠지 모르게 축 가라앉은 기분이다. 산책으로 내 기분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잘 지낼 방법을 늘려가게 됐다. 그 방법들 덕분에 흔들림 없이 안정감을 느끼며 내 삶의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어떻게 보든, 뭐라고 하든 나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무엇이 당신을 나답게 만드는지 집중해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삶에 고단함의 무게는 줄어들고 소중한 것들은 더욱 늘어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날이 올 테니까.
-
- 글. 김민영 작가 말하는 직업을 꿈꿨지만, 현재 쓰고, 말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보듬는 작가, 강사, 컬러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눈파는 시간의 힘>,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