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왕국의 터전, 라하이나
하와이는 낯설고 은밀한 풍광을 지녔다. 호놀룰루가 속한 오하우섬을 벗어나면 스펙터클한 하와이가 열린다. 군도 남쪽 섬 마우이는 쇼핑센터로 각인된 호놀룰루처럼 분주하지 않다. 해변은 휴양과 서핑으로 채워지고, 소설 속 등장했던 고래잡이 포구와 휴화산의 일출 체험이 기다린다.
마우이는 옛 하와이 왕국의 수도를 간직한 섬이다. 호놀룰루로 수도를 옮기기 전, 서쪽 라하이나는 18, 19세기 하와이 왕국의 번잡한 포구 도시였다. 라하이나는 하와이 원주민의 말로 ‘잔인한 태양’이라는 뜻을 지녔다.
뜨거운 햇살에 부서지는 포말처럼, 라하이나 인근 바다에는 수평선을 찬란하게 물들이는 고래들이 자주 출몰했다. 19세기 라하이나에는 고래잡이를 위해 400여 척의 포경선이 드나들었을 정도. 왕국과 고래의 흔적은 라하이나 곳곳에 담겨 있다. 도심에는 고래 그림과 조각상이 새겨져 있고, 포경선 선원들이 묵었던 ‘파이오니어 인’ 호텔이 남아 있다. 하와이 왕조를 통합한 카메하메하 왕의 궁전과 요새, 법원과 와이올라 교회에도 옛 사연이 묻어난다. 19세기 중반 카메하메하 3세가 통치하던 시기는 하와이 왕조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린 시대였다. 작가이자 선원이었던 허먼 멜빌은 고래를 소재로 한 소설 ‘백경’을 통해 라하이나의 풍경을 작품 속에 담았다.
라하이나 항구의 아침 정취는 북적거리고 한껏 들떠 있다. 날렵하고 덩치 큰 생선인 ‘마히마히’가 포구에서 거래되고, 생선을 옮기는 어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고래가 출현하는 시즌이면 항구 주변으로는 고래 구경을 나서는 탐험선들이 손님들을 맞는다.
‘웨일 와칭’은 낚시와 함께 라하이나 포구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다. 포구에서 30여 분만 이동하면 고래가 뿜어내는 큰 물거품을 만난다. 혹등고래의 주요 활동무대가 바로 하와이 마우이섬 일대다. 혹등고래는 알래스카에 머물다 마우이섬 인근으로 이동해 새끼를 낳는다. 큰 고래와 만나지 못하더라도 돌고래, 거북 등과 어우러져 스노클링을 즐기는 투어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휴화산 할레아칼라의 일출 체험
라하이나는 1845년 호놀룰루로 수도를 옮기면서 도심 윤곽이 쇠퇴했다. 도시 주변에 훈풍을 불어넣은 주역은 북쪽 카아나팔리 해변이다. 카아나팔리 해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조트들이 모인 마우이 최대의 휴양지다. 이방인들은 낮은 모래 해변과 노천 바, 쇼핑센터가 어우러진 공간에 쉼터를 마련하고 여유롭게 휴양을 즐긴다. 은밀한 공간을 원하는 신혼부부들도 최근 카아나팔리 해변을 즐겨 찾는다.
카아나팔리 해변과 라하이나 일대는 하와이에서 가장 빼어난 일몰 포인트다. 해 질 무렵이면 고래 투어 보트들은 석양의 크루즈에 자리를 양보한다. 태평양 너머로 가라앉는 태양과 함께 선상에서는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하와이 원주민들의 전통춤인 ‘루아우쇼’가 펼쳐진다. 요트에 오르지 않더라도 라하이나의 메인 거리인 프런트 스트리트 곳곳이 일몰 풍광으로 채워진다. 바닷가에 도열한 옛 유적과 호텔에도 석양이 내려앉는다.
해변의 일몰은 휴화산의 일출과 감동의 격을 같이한다. 마우이의 최고 별천지는 할레아칼라 화산이다. 휴화산의 일출 체험을 위해 이방인들은 어둠 속에서 도로를 질주하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할레아칼라의 휴화산과 해돋이를 마주하는 일정은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빽빽하게 산을 기어오르는 차량 행렬과 마주치면 침묵하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해발 3,058m에 자리한 세계 최대급 규모의 휴화산인 할레아칼라는 동트기 전 빼곡한 인파로 채워진다. 어둠과 구름을 걷어내고 분화구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이방인들은 옷깃을 동여매고, 우비를 뒤집어쓰고 웅성거리며 자리를 지킨다.
이곳 원주민 언어로 ‘태양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할레아칼라는 혹성의 표면을 닮았다. 910m 깊이의 분화구 안에는 작은 분화구가 성긴 그늘을 드리우며 담겨 있다. 태양을 부르는 원주민 여인의 주문이 끝나면 마술에 홀린 듯 태양이 솟고, 갓 달궈진 붉은 분화구가 자태를 드러낸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곳 일출을 본 뒤 “지금껏 본 풍경 중 가장 숭고한 경치”라고 평했다. 분화구를 응시하며 수백 명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짓는 진귀한 장면이 압권이다.
마우이의 최고 별천지는 할레아칼라 화산이다. 휴화산의 일출 체험을 위해 이방인들은 어둠 속에서 도로를 질주하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역동적인 파도, 서퍼들의 아지트
할레아칼라가 속한 마우이 동쪽은 서쪽 해변과는 풍광이 다르다. 하와이의 자연과 삶이 호젓한 경치 속에 담긴다. 고원지대 쿨라는 화산토에서 자라는 하와이 커피와 라벤더 농장을 만나는 곳이다. 할레아칼라 산자락의 마카와오 마을은 아티스트의 감성이 전해지는 소박한 예술 동네다.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소품숍이 인상적이며, 야생마를 길들였던 하와이안 카우보이들의 대회가 매년 7월 이곳에서 열린다.
마우이의 동쪽 끝은 ‘천국의 길’로 알려진 ‘하나’로 연결되는 길이다. 낯선 폭포와 협곡 등 하나의 울창한 자연경관이 드라이브 길 속에 담긴다. ‘어퍼 하나위’, ‘와일루아’ 폭포 등에 넋을 놓거나,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모아 해변에서 나만의 휴식을 탐닉할 수 있다.
마우이 투어의 정점은 서핑이다. 해변 곳곳에 서핑 포인트가 담겨 있다. 북쪽 후키파 해변은 실력자들이 도전장을 던지는 집채만 한 파도가 볼만하다. 특히 후키파 해변은 서핑과 함께 윈드서핑을 즐기는 포인트다. 남서쪽 해변인 푸아마나, 우크메하메 등은 초·중급 서퍼들이 여유롭게 서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와이는 세계 3대 서핑 스폿으로 명성 높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서핑이 시작됐으며, 베테랑들이 출전하는 대규모 서핑대회를 이어오고 있다. 역동적인 파도를 탐하는 서퍼들은 와이키키의 노스쇼어에서 마우이 북쪽의 저스 해변으로 공간이동 중이다.
- Tip마우이 가이드
카훌로이 공항이 마우이의 관문이다. 본 섬 호놀룰루에서 수시로 비행기가 오간다. 공항에서 차량 렌트를 하는 게 일반적이며, 라하이나 등 주요 도시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주요 관광지는 차가 없어도 ‘마우이 버스’로 오갈 수 있다.
레스토랑들은 인근 바다에서 잡은 식재료를 테이블 위에 올린다. 피쉬 컴퍼니, 쉬림프 컴퍼니 등 생선, 새우를 테마로 한 식당들이 포구 주변에 자리해 있다. 그중 해산물에 해조류와 채소를 얹은 ‘포케’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현지식이다.
마우이에서는 하와이 전통춤인 ‘루아우쇼’를 볼 수 있다. 원주민의 춤과 음악을 야외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바비큐 식사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라하이나의 프런트 스트리트에서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버스킹과 함께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할레아칼라에서 일출을 보려면 사전 예약이 필수다. 할레아칼라 정상의 평균온도는 여름에도 3~14도까지 떨어진다. 마우이 인근의 몰로키니 섬은 열대어와 함께 스노클링을 즐기는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