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 과정 마치고 다시 붓을 잡다!
황재철 대표는 그의 집 서재에서 취재진을 맞았다. 서재 벽면에는 수묵화와 유화가 걸려 있었고,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가족과 찍은 사진들도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먹, 붓, 화선지, 문진 등의 서예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먹 묻은 붓과 글자를 쓰다가 만 화선지도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년간 석박사 공부하느라 서예를 하지 못했어요. 그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붓을 잡았고, 또 간간이 전시회도 했었죠. 그래서 지금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어요.(웃음)”
수북하게 쌓인 화선지를 보여주며 황재철 대표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터치 키패드를 제조하는 기업인 (주)동원특수화학을 이끌어온 황재철 대표는 그의 말처럼 늦은 나이에 다시 학업에 전념해 박사를 취득했다. 그래서 ‘77세에 책가방 메고 학교 간 사장님’, ‘한양대 최고령 박사’로도 유명해졌다. 황재철 대표는 지난 2월 한양대학교 교정에서 박사학위 졸업 가운을 입었고 한양대 역사상 최고령 박사학위 수여자가 됐다. 서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왜 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중국의 한 고전에서 ‘삼불후(三不朽)’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삼불후란 ‘썩지 않는 세 가지’란 뜻으로 공(功), 덕(德), 말(言)을 의미합니다. 해석하자면, 업적을 남기고 인격을 남기고 글을 남기라는 의미입니다. 제 지난 삶을 돌아보니 글을 남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학교에 간 이유입니다.”
황재철 대표가 쓴 논문은 <윤동주 시의 장소성에 관한 연구>로, 윤동주의 시적 요람인 북간도, 평양, 교토, 후쿠오카를 거치며 견고한 생명력으로 탄생한 시인의 삶과 시를 탐구했다. 황재철 대표가 박사 과정을 경영이 아닌 문학을 택한 이유도 삼불후의 깨달음과 맥을 함께한다.
붓을 통해 만나는 또 다른 세상
황재철 대표가 서예에 마음을 두게 된 건 어린 시절의 기억 덕분이다. 그는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된,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외갓집이 영양 남씨의 종갓집이었어요.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가면 대청에서 할아버지께 한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외가에서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지요. 그러면서 붓을 잡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들어 객지에 나와 있으니 그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서예를 시작한 거예요.”
서예는 인내와 수양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강한 집중력도 요구된다. 정갈한 마음으로 먹을 갈고 화선지를 반듯하게 펼치고 붓으로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붓을 잡고 몰입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붓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이내 정신이 맑아진다. 황재철 대표는 “이것이 바로 서예의 매력”이라고 했다.
“서예는 붓끝에 먹을 먹이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먹이 넘치면 종이가 젖고, 먹이 모자라면 붓이 힘을 잃고 말지요. 서예는 유화처럼 고칠 수가 없어요. 작은 실수도 바로 드러나죠. 또한 서예는 팔과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써야 합니다. 손과 몸,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아떨어질 때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어요. 이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는 그 어떤 일보다 서예가 가장 어려워요.”
서예는 글자의 예술이다. 붓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글자의 형태와 질감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생명력이 느껴지는 하나의 존재가 된다. 매끄럽게 흐르는 선과 힘 있게 찍힌 점들 사이에서 황재철 대표는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는다.
사랑하는 아내, 설악산 촛대바위,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집, 관악산에서 만난 꽃 등 그가 그린 유화도 서예 못지않게 눈에 띄었다.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홍대 미대 수원 캠퍼스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그의 말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젊었을 때는 어디 가서 무엇을 배우고 할 시간이 없었어요.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 일하고 시간이 남을 때 틈틈이 책을 봐가며 혼자 공부했어요.”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도 황재철 대표의 삶의 낙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책을 안 읽어본 날이 없다는 그. 책이 제 삶을 지탱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서예는 정갈한 마음으로 먹을 갈고 화선지를 반듯하게 펼치고 붓으로 한 획,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한 획, 한 획 글자를 쓰듯 삶을 소중히 가꿔야 해
붓을 잡고 한 획, 한 획 정성 들여 글자를 쓰는 시작한 황재철 대표. 시나브로 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의 이 말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한다.
황재철 대표는 1977년 20대의 나이에 직원 3명으로 고무 제품 사업을 시작했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자동차 터치 키패드 제품으로 국내 자동차 회사의 80%에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주)동원특수화학은 머지않아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어린 시절, 집이 정말 가난했어요. 제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가난이 저를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다면 제가 평생 가졌던 ‘절실함’이 없었을 겁니다.”
황재철 대표가 또다시 붓을 잡았다. 이번에는 ‘화명고토(花明故土) 청풍만리(淸風萬里)’라는 글자를 힘 있게 써 내려갔다. ‘꽃처럼 아름답게 이 땅을 지켜라. 바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황재철 대표가 마음속 이야기를 전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목표를 세우고, 하루하루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몸뚱어리의 때는 묻어도 되고 낡은 옷도 상관없지만, 정신의 때는 절대 남겨선 안 됩니다. 정말로 소중히 가꿔야 할 건 몸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입니다.”
황재철 대표의 말은 그의 글씨만큼이나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가 쓴, 선과 면이 조화를 이루는 글자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