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 테마

타인의 생각

오만한 가짜 자부심에
빠지지 않으려면

글 · 허용회 사이콜로피아 대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자부심이다.
하지만 잘못된 자부심이 자리 잡으면
사랑보단 채찍이 내 주위를 맴돌게 된다.

  • #능력
  • #태도
  • #능동적

자부심과 자존심은 달라요

심리학적으로 자부심이란 본인이 성취한 일을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할 때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자부심은 대표적인 자기초점 감정의 하나로, 타인초점 감정인 공감 등과는 구분된다.

즉, 자부심이란 오롯이 자신을 향한, 자신만을 위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주의 성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부심을 나타내는 세부 감정들, 이를테면 ‘보람차다’, ‘성취감을 느끼다’, ‘뿌듯하다’, ‘긍지를 느끼다’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실제로도 더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집단주의 성향, 즉 타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길 좋아할수록 자부심보다는 타인에 대한 연민, 공감, 연대감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난 뭐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살면서 딱히 이룬 게 없어서, 자존감이 낮아요” 등 종종 사람들은 자부심과 자존감을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자부심과 자존감은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 자부심이란 자신의 ‘능력’과 밀접히 연관된 감정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무언가 이뤄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곧 자부심이다. 반면 자존감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관련이 깊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든, 모자라든, 뭔가를 이뤘든, 이루지 않았든 그것이 곧 ‘나’를 부정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좀 못해도 어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나도 뭔가 잘하는 게 하나는 있겠지” 하면서 비록 자부심을 경험하진 못해도 자존감은 높게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자부심과 자존감이 아예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자부심은 높은 자존감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며 우수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높은 자존감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자존감에 이르는 길이 비단 자부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일상에서 긍정적인 기분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 부모나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얼마만큼 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자신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으며 이를 실현해 나갈 수 있는지 등 능력적인 부분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높은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Self Esteem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무언가 이뤄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곧 자부심이다. 반면 자존감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관련이 깊다.


‘라떼는~’ 해야 하는 이유

나는 일기를 쓰는 등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가 그동안 이뤄놓은 자랑스러운 결과물들을 반추하면서 나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곤 한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이런 버릇에 아주 잘 들어맞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가치 확인 이론이라고 하는데, 심리학자 스틸은 해당 이론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 업적 등을 곱씹으며 자부심을 얻는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심리학자 홀과 동료들은 이와 관련된 재밌는 심리학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들은 노숙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각각 인터뷰를 실시했다. 먼저 자기가치 확인 조건의 노숙자들에게는 “지금껏 살면서 본인이 제일 잘나갔던 순간에 대해 들려달라”고 했고, 통제 조건의 노숙자들에게는 “최근 먹었던 식단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노숙자들이 귀가하는 길에 탁자를 가져다 두었는데, 그 위에는 노숙자 재활 프로그램 안내 전단이 비치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노숙자들이 전단을 가져가는지 여부에 주목했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자기가치 확인 조건의 노숙자들이 통제 조건에 비해 더 높은 비율로 탁자 앞에 멈췄으며, 실제로 전단을 가지고 간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잘 나갔던 ‘왕년’을 떠올린 노숙자들은 잊고 있던 자부심을 떠올렸으리라. “그래, 내가 알고 보면 참 능력 있고 이룬 것도 많은 사람이었지. 이참에 재기해보자. 난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Self Worth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성취를 찾아다닌다.


자발적인 동기에서 피어나는 자부심

이처럼 자부심에는 묘한 힘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고, 자기를 긍정하게 하는 힘이 있다. 더 나아가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심리학에는 자기 결정성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간단히 말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열심히 노력하며 재미를 느끼는 ‘자발적인 동기’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다룬다. 자발적인 동기를 위해서는 유능감, 관계성, 자율성, 이렇게 세 가지가 필요한데 각각 ‘내가 충분히 유능하다는 느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이뤄간다는 느낌’, ‘스스로 과업의 목적과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그리고 자부심이란, 이 중 유능감 및 자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한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성취를 위해 스스로, 자신만의 목표를 설계하고 나아가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발적인 동기’에 누구보다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성취를 찾아다닌다.


여러분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까?

지금은 프리랜서지만 한동안 직장인으로 살았다. 심리학 전공을 살려 HR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나름 일하면서 연구 성과도 쌓고, 매출에도 기여하고, 연봉협상에서도 대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 과정들이 자부심으로 남았는가, 하면 솔직히 애매하다. 일부 직무, 업종을 제외하면 대체로 관료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자부심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과업이나 프로젝트들이 모두 분업화되어 있기에 나는 그 업무의 일부만을 담당할 뿐, 나의 노고가 가시적으로 어떻게 성과에 기여하였는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일선에서 직접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며 매출을 체크하는 세일즈 직무라면 모를까, 개발자나 기획자, 디자이너, 경영지원 등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매출 어디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핵심성과지표(KPI), 다면평가, 고과점수/등급, 연봉협상 결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 나의 노력이 결과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심리학자 트레이시와 로빈스는 자부심의 함정을 경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부심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본인의 노력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은 성취감인 진짜 자부심, 다른 하나는 명확한 성취 없이 단지 자기애에 기반을 둔, 오만한 자부심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과업을 포장한다. 남들보다 더 바쁜 척, 남들보다 더 힘든 척 연기하며 자신이 왜 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를 그저 ‘말’로서 열심히 어필하고 다닌다. 그러나 성취에 기반하지 않은 오만한 자부심은 진짜 자부심에 비해 위태롭기 그지없다. 내가 이룬 성취는 흔적을 남기지만, 이를 위장하고 포장하려는 말들은 쉽게 흩어지기 마련이다.

Pride

돈은 노력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지, 노력 그 자체의 산물은 아니기에 때로는 연봉보다 이케아에서 사다 직접 조립한 가구가 더 자부심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자부심 = 연봉인가?

현대 사회가 점차 복잡해질수록,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들이 점차 세분화될수록 자부심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늘어가는) 월급과 연봉이 곧 직장인의 자부심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돈 많이 준다고 사람들이 다 만족하는 건 아니다.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 들어갔어도 이직과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돈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그것이 오롯이 자부심으로 연결되었다면 그 자리에 눌러앉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 다른 종류의 자부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돈은 노력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지, 노력 그 자체의 산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연봉보다 이케아에서 사다 직접 조립한 가구가 더 자부심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설사 물질적 대가가 적더라도 내가 직접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만든 무언가라든지, 대인관계에서 경험하는 유능함이라든지, 혹은 여가와 삶의 질 측면에서 겪게 되는 삶의 보람이라든지, 지키고자 하는 고귀한 신념을 따를 때의 긍지라든지, 이런 비물질적인 종류의 자부심이야말로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 글. 허용회 작가 사이콜로피아 대표. 심리학 전문 작가이자 강연자. 심리검사를 개발하고 코칭하는 일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은 심리학에 속았다>,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 <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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