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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국내)

우리 국토 최서남단 지키는
강건한 섬

전남 가거도

글 · 사진 진우석

우리나라 최서남단 가거도는 멀다.
오죽했으면 조태일 시인이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했을까.
가거도는 강건한 기상이 넘친다.
가거도의 진수를 맛보려면 걸어야 한다.
바다에서 수시로 피어나는 해무를 친구 삼아 독실산과 가거도 등대를 둘러보면,
가거도만의 거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가거도
  • #독실산
  • #최서남단
너른 터에 자리한 가거도 백년등대

찾아가기 어렵지만 절경 간직한 섬

목포에서 가거도까지 항해 거리는 약 240㎞, 시간은 4시간쯤 걸린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36㎞쯤 떨어져 있지만, 중간에 하태도 또는 만재도 등을 거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동해의 멀고 먼 섬인 울릉도가 포항에서 217㎞쯤 떨어져 있다. 따라서 가거도로 가는 뱃길이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먼 셈이다.

운이 좋았다. 목포를 출항한 여객선은 장판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졌고, 덕분에 배 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가거도 도착을 알리는 호들갑스러운 방송에 눈을 떴다.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라는 가거도에 쉽게 온 것 같아 잠시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떠나는 날, 서울의 여러 산악회가 뭉쳐 가거도행 배를 전세 냈다. 덕분에 그 배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가거도에 닿은 것이다.

섬에 내리자 구름이 무겁다. 섬의 높은 곳을 모두 삼키고 마을과 산비탈 후박나무를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다. 회룡산에서 내려온 바위가 바다에 잠겨 절경을 이룬다. 첫인상이 울릉도와 비슷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예약한 민박집에서 나온 트럭을 타고 섬의 북동쪽 항리마을로 이동한다. 급경사 언덕을 오르면 샛개재, 여기서 3.5㎞쯤 산비탈을 따르면 항리마을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항리마을과 섬등반도의 수려한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특히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섬등반도는 ‘가거도 공룡능선’이라 할 만하다.

가거도의 크기는 여의도 보다 조금 큰 9.18㎢. 해안선길이가 22㎞로 제법 큰 섬이다. 예로부터 가가도(可佳島), 가가도(家假島) 등으로 불렸으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고 부른 것은 1896년부터이다. 소흑산도(小黑山島)는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섬 전체가 후박나무로 뒤덮여 있고, 대부분 해안은 단애 절벽을 이룬다. 가거도 걷기는 항리마을을 베이스캠프로 삼는다.

항리마을의 호젓한 돌담길
섬등반도에서 바라본 항리마을. 해무가 껴 신비롭게 보인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항리마을과 섬등반도의 수려한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특히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섬등반도는 ‘가거도 공룡능선’이라 할 만하다.


신안군 1,004개 섬 중 가장 높은 독실산

가거도 독실산 트레킹은 항리마을에서 시작해 독실산과 가거도 백년 등대를 찍고 마을로 돌아오는 제법 힘든 길이다. 들머리는 섬누리민박 바로 위에서 항리마을로 이어진 길이다. 길은 언덕 위의 폐가로 이어진다. 폐가는 섬등반도가 잘 보이는 기막힌 자리에 서 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방에는 아이들 장난감이 나뒹굴고 있다.

폐가를 나오면 15가구쯤 사는 마을 길로 이어진다. 항리마을의 집들은 산비탈에 자리한 탓에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이 정겹다. 마을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이어진다. 길섶에 산딸기가 가득하다. 탐스러운 열매를 따 입에 넣으니 날치알처럼 톡톡 터진다. 길은 컴컴한 후박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예전 주민들은 독실산에 가득한 후박나무의 껍질을 벗겨 팔았다고 한다.

숲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곤충들이 흰 날개를 휘날리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이가 반짝반짝하는 것이 영락없는 숲의 요정처럼 보인다. 나뭇잎에 앉은 녀석들에게 가만가만 다가가 그 실체를 살펴본다. 생김새는 다리가 긴 거미와 큰 모기를 합쳐놓은 듯하다.

한동안 급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완만한 산비탈을 타고 돈다. 바위에 낀 이끼, 나무에 붙은 콩자개, 고비와 관중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이윽고 능선에 올라붙는다. 능선에서 좀 더 오르면 갈림길. 왼쪽이 백년등대, 오른쪽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휘파람 불며 부드러운 능선을 15분쯤 걸으면 정상에 올라붙는다.

손바닥만 한 정상 일대는 옹색하다. 정상 옆에 공군 레이더기지 건물이 서 있다. 건물 계단에 서자 비로소 시원한 조망이 열린다. 동쪽으로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상태와 하태도, 만재도가 콩알만 하게 보인다. 만재도 오른쪽 멀리 섬인 듯, 구름인 듯 아스라이 나타나는 것이 보여 정상 초소의 군인에게 물어보니 제주도라고 한다. 가거도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125㎞ 떨어진 제주도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기상이 넘치는 섬등반도의 암릉
노을전망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며 항리마을로 내려오는 길

1907년 불 밝힌 가거도 백년등대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오는 길에 전망 좋은 곳 안내판이 있다. 그 길로 5분쯤 들어가면 암반이 펼쳐지며 시원하게 시야가 열린다. 이곳이 정상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시 능선을 타고 가면 곧 올라왔던 갈림길. 여기서 등대 방향으로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1시간쯤 숲길 능선을 걸으면 신선봉 갈림길. 이어지는 산길은 급경사다. 곤두박질치듯 내려서면 대밭 사이로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가거도 백년등대는 1907년 12월에 처음 불을 밝혔다.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견고하게 지어져 물새는 틈이 없다. 마침 등대지기가 돌아와 등대 문을 열어준다. 탕탕 철계단을 타고 오르자 철새의 낙원인 구굴도와 거문여 등이 잘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다의 깊고 맑은 빛이 감동적이다.

등대에서 항리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독실산에서 내려온 길만큼 힘들다. 해변에 경사가 워낙 심해 산의 8부 능선까지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거의 능선 가까이 오르면 신선봉 갈림길. 신선봉은 독실산에서 가장 조망이 좋다. 항리마을과 구굴도가 양쪽으로 펼쳐진다. 신선봉을 내려오면 비교적 쉬운 길이 이어진다. 조망 좋은 노을 전망대를 지나면 향리2구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다시 해무가 몰려와 산과 바다를 집어삼킨다.

가거도의 섬등반도로 떨어지는 노을
  • Tip가거도 가이드

대중교통이 없어 좀 불편하지만, 걷기 여행을 즐기기 제격이다. 트레킹은 항리마을 섬누리민박 앞에서 출발한다. 코스는 항리마을~독실산~백년등대~신선봉~항리마을, 7.2㎞ 4시간쯤 걸린다. 정상 직전 삼거리 근처의 전망대는 꼭 들러보는 것이 좋고, 백년등대 오가는 길이 매우 급경사라 주의가 필요하다.

교통

목포항여객터미널(1666-0910)에서 가거도 가는 배는 07:40, 나오는 배는 13:00에 있다. 4시간쯤 걸린다. 배편은 떠나기 하루 전날 운행 여부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가거도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대개 민박집 트럭을 이용한다.

숙소

섬누리펜션(061-246-3418)은 가거도 토박이 박재원 씨가 운영한다. 시설이 깔끔하고 오션뷰가 멋지다. 그밖에 다희네민박(010-9213-5514), 가거도항에 둥구펜션(010-2929-4989) 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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