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Retro)란, 과거의 모양, 제도, 풍습 등으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을 말한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요즘 ‘레트로 아이템’이 우리 사회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레트로 아이템에는 누군가의 추억이, 누군가의 새로운 재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MZ세대들이 많이 다닌다는 홍대, 성수 등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크롭탑과 로라이즈 팬츠, 자신의 체형보다 2배는 큰 상의와 통 넓은 바지, 미니스커트와 청청패션(청자켓-청바지), 헤어밴드까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뽐내는 MZ세대들의 패션이 눈에 띈다. 각자의 취향 속에 하나로 통일되는 이 패션은 일명 ‘Y2K 패션’으로, 2000년대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들이다.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감성인 줄만 알았던, 촌스럽게 여기던 1990~2000년 패션 아이템들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부활하기 시작했다. 옛날 것에서 ‘힙(Hip)’함을 발견하고,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러한 레트로 패션의 부활을 돕는 데는 유명 아이돌의 역할도 컸다. 인기 걸그룹 에스파, 뉴진스가 각 그룹만의 분위기로 복고적인 뮤직비디오, Y2K 감성 패션을 선보여 많은 MZ세대 팬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멤버 모두 200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젠지(Gen Z)세대를 대표하는 뉴진스가 경험해보지 않은 Y2K 패션과 감성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많은 10·20대들에게 세기말 감성이 자연스레 스며들게 되었다.
이외에도 빅로고 티셔츠, 힙색, 틴트 선글라스, 젤리슈즈, 곱창밴드, 머리핀 스타일 또한 레트로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한 가운데 MZ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지그재그’는 레트로 감성이 담긴 플라워 패턴 아이템 거래액이 45배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생활과 일상에서 억눌림을 받았던 것이 화려한 패턴, 빅로고, 비비드한 컬러 등 Y2K 감성이 가득한 패션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대중들의 불안한 심리가 개성 있는 Y2K 패션으로 나타난 것과 비슷한 경향이라는 의견이 있다.
레트로 문화는
중장년층들에겐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젊은 세대들에겐 재미와 새로움,
특별한 경험까지 선물하는
매력적인 문화가 되었다.
패션과 함께 다시 사랑받고 있는 Y2K 아이템들이 있다. 먼저 필름 카메라.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추억으로 사라졌던 필름 카메라가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이들로 인해 인기 있는 레트로 아이템이 되어 돌아왔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필름 카메라만의 빈티지한 감성과 색감으로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필수 준비물이 된 것이다. 관련 업체들도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하여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필름 카메라, 캠코더 등으로 활발한 마케팅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CD플레이어. 라이프스타일 앱 ‘오늘의 집’에 따르면 지난 5월, CD플레이어 키워드 검색량은 300% 증가했다. 필름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요가 적어졌던 CD, CD플레이어가 감성 인테리어 아이템 및 레트로 아이템으로 MZ세대의 소비를 끌어낸 것이다. 카세트테이프, CD, LP 등 추억의 물건으로 요즘 아이돌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손민수 하고 싶은(따라 하고 싶은)’ MZ세대 사이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애플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클래식’도 2022년 공식적으로 단종을 발표했지만, 최근 아날로그, 레트로 아이템의 인기로 아이팟 또한 수요가 많아져 중고마켓에서 원가보다 비싼 값으로 리퍼 제품을 구매하는 수요가 늘었다. ‘아이팟+줄 이어폰 감성’이라며 요즘 흔히 쓰는 무선 이어폰이 아닌 줄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이 인기를 끌며 10~20년 전 유행했던 음악 아이템들로 MZ세대 사이에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엔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생수를 사 먹는 경우가 많지만, 어릴 적 냉장고 안에 시원한 보리차를 꺼내먹었던 추억이 있다면 이 레트로 아이템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보리차 물통으로 유명했던 추억의 ‘델몬트 유리병’이다. 롯데칠성음료에서 추억 속 오렌지 주스인 델몬트 유리병을 기존보다 작은 버전으로 출시했다. 이 또한 레트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델몬트 유리병만의 네모난 디자인과 독특한 그립감, 주스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여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켜 출시와 동시에 완판의 기록을 세웠다.
또한 롯데웰푸드에서는 1983년 출시한 ‘블루베리껌’을 13년만에 재출시했다. 또 ‘쥬시후레시’, ‘이브껌’, ‘후레시민트’ 등 ‘부활! 롯데껌’ 캠페인을 통해 과거 인기를 끌었던 껌들을 재출시하며 레트로 시장에 더욱 불을 붙였다. 덕분에 롯데웰푸드 매출은 약 25%성장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 ㈜하림은 예스러운 감성을 패키지에 녹인 ‘레트로 닭볶음탕용’ 닭고기 신제품을 출시했으며, 오뚜기와 롯데ON도 40년 전 ‘3분 카레’ 출시 초기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3분 레트로 카레·짜장’을 한정판으로 판매, 2000년대 초 1020에게 인기를 끌었던 ‘한스델리’와 ‘캔모아’는 이마트24와 손잡고 편의점 레트로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레트로 문화는 음악, 식품에까지 영향을 주어 중장년층들에겐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젊은 세대들에겐 재미와 새로움, 특별한 경험까지 선물하는 매력적인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레트로 아이템의 유행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최근 미국, 영국 등 Z세대의 소비 양상이 레코드 음반, CD, 실물 책 등 아날로그 형태로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외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때 그 시절의 아날로그, 레트로 감성이 요즘 통하는 감성으로, 힙한 문화로, 재밌고 새로운 개성으로 통하는 것이다.
어떤 점이 MZ세대에게 과거의 유행을 따르게 만드는 것일까? 지난 8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빅토리>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90년대 세기말 감성을 가득 담은 레트로 소품들과 1999년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당시 사람들의 스토리를 담아 부모와 자녀 모두 함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예능·드라마·영화 등 전문가들은 미디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현세대의 특징으로 인해 각 분야의 레트로 아이템들이 특히 MZ세대에게 큰 파급력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 아이템. 20년 전, 젊은 시절 부모님의 패션과 물건이 현재 자녀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색다르고 개성 있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레트로 아이템이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고, 공감하게 하며, 서로를 더욱 이해하는 매개체로 발전되는 좋은 시작점이 아닐까?
참고
2000년대 대학가 휩쓴 그때 그 브랜드, 레트로 열풍 타고 편의점 들어왔다, 조선일보, 2023.06.12.
“레트로 계속간다”…플라워 패턴 아이템 거래액 45배 이상 급증, 이데일리, 2024.05.22.
‘레트로 감성’ Z세대 덕에 ‘아날로그 경제’ 다시 뜬다, 글로벌비즈, 2024.07.07.
Y2K패션·필름카메라·이브껌…레트로엔 ‘추억’과 ‘재미’ 녹아있다, 국민일보, 2024.07.22.
Y2K도 힙하게...뉴진스의 ‘세기말’ 스타일링, 한국일보,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