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 20명, 고양이 30마리

고흥 시내에서도 동남쪽으로 40분쯤 달리면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가는 길에 고흥 최고 명산인 팔영산과 마복산이 수려한 해안과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쑥섬은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이다. 배를 타면 5분 만에 닿을 수 있어 배 위에서의 풍경은 오래 조망할 수 없다. 하지만 쑥섬 선착장에 내리면 고양이가 그려진 포토존이 우릴 반긴다. 포토존 뒤로 커다란 갈매기 조형물이 우뚝한 카페 건물과 아담한 집들이 보인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이나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섬 곳곳에 숨어 있다. 섬은 질 좋은 쑥이 많이 나서 쑥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갈매기 카페에 닿자 “야옹~”하며 고양이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보이더니 어느새 네댓 마리가 나와 반겨준다.

쑥섬은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섬이다. 20여 명의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은 섬이다. 쑥섬을 걷다보면 고양이를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약 30마리에 달하는 고양이들은 벤치에서 졸고, 돌담 위를 유유자적 산책하고, 관광객에게 달려와 등을 비비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관광객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은 주민들의 적적함 또한 달래줬다고. 그래서 주민들은 마을에 고양이 집과 캣타워 등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쑥섬 구경은 갈매기 카페에서 오솔길 따라 난대 원시림, 능선에 자리한 꽃밭 정원, 신선대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족하다. 넉넉하게 1시간 30분쯤 걸린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펼쳐지는데, 여기가 마을의 당산인 난대 원시림이다. 빽빽한 숲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와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 짧은 구간에 아름드리 후박나무, 푸조나무, 육박나무 등이 우뚝하고, 울창한 대숲도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게 육박나무다. 수피의 문양이 해병대 군복의 문양을 닮아 ‘해병대나무’, ‘국방부나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몸체는 서어나무처럼 근육질이며 용처럼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은 모습이 장관이다. 200년쯤 된 육박나무는 특이하게 몸에서 줄기 하나가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20년쯤 되는 가지다. 그런데 이 가지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다. 성인 나이쯤 되어야 껍질이 벗겨진다고 한다.

비밀 정원을 가꾼 부부, 전남 1호 민간 정원

난대림 오솔길을 지나 능선에 올라붙으면, 시야가 열리면서 수려한 해안이 펼쳐진다. 여기가 ‘환희의 언덕’이다. 벤치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옆에 앉아도 도망가지 않고, 등을 비비며 재롱을 부린다.

이제 휘파람이 절로 나는 능선길이다. 하나둘 꽃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꽃밭 가득한 정원이 나온다. 능선에 정원이 있는 게 신기하다. ‘별정원’, ‘달정원’ 등 이름도 예쁜 정원에는 300여 종의 꽃이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특히 6월에 피는 수국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정원은 바다를 품었다. 화려한 꽃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다. 앞쪽으로 나로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반대편으로 쪽빛 바다 멀리 손죽도와 초도가 아른거리는 풍광은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한다. 이 정원은 섬 밖에서는 보이지 않기에 비밀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정원은 김상현·고채훈 씨 부부가 20년 넘게 가꿨다고 한다. 김 씨는 교사, 고 씨는 외나로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이다. 부부는 틈나는 대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가뭄이 들 때도, 장맛비가 내려도 계속했다. 덕분에 쑥섬은 전남 1호 민간 정원으로 지정됐다. 정원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도 있지만, 능선을 계속 따라야 볼거리가 많다. 정상 직전에는 남자산포바위와 여자산포바위가 있다. 산포바위는 옛사람들이 놀던 곳을 가리킨다. 동네 처녀와 총각이 몰래 만나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정상의 높이는 불과 83m다. 하지만 그 앞에 붙은 ‘에베레스트 8,848m 백두산 2,744m 한라산 1,950m. 별 차이가 없군요’라고 쓰인 푯말이 웃음을 자아낸다. 남도 특유의 능청과 여유가 느껴진다.

90세 넘은 김숙희 할머니와 말동무

정상을 지나 등대를 찾아간다. 작은 등대 아래에 갯바위로 나가는 길이 있다. 갯바위 일대는 수려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갯바위 위에 강태공 한 분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고기 많이 잡았어요?”라고 물어보니,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라고 한다. 그런데도 느긋하다.

강태공에게 시선을 떼고 바다를 바라보니 수직에 가까운 해벽 사이로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신선이 내려와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풍광이 좋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무들이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가지가 울퉁불퉁한 후박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고, 해변 동백숲 앞 벤치에서도 쉬었다. 쑥섬에서는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다. 마을에 도착하면 돌담길이 볼 만하다. 골목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이 정겹다. 돌담에서 고양이가 꼬리를 들어 올리고 사뿐사뿐 걷는 게 꼭 발레를 하는 것 같다.

마을 정자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셔 말을 붙여봤다. “동무 둘이 있었는디. 다 요양원에 갔어요. 이제 섬에 할머니는 나밖에 없어. 심심해 종일 요로코롬 있어요.” 김숙희 할머니의 연세는 90이 넘었다. 하지만 귀도 안 먹고 총총하다. 19살에 나로도에서 시집와 평생을 쑥섬에서 살았다고. 사진을 찍으니 웃어 주신다. 할머니와 말동무하면서 쑥섬 여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