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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옛’것이
더 ‘힙’하다

글 · 편집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에서도 우린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것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옛것에 힙(Hip)을 더해 모든 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힙 트래디션이 열풍이다.




하나의 놀이터가 된 전통시장

한복, 약과, 국가유산 등 옛것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옛것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을 힙 트래디션이라 정의하는데, 힙 트래디션은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힙(Hip)과 전통(Tradition)을 합친 말로,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말한다. 이러한 힙 트래디션 열풍에 가장 큰 수혜를 본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힙 트래디션과 레트로 열풍으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와 간식을 찾는 MZ세대가 늘면서 전통시장이 젊은 층의 놀이터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소에서 2019년(1~4월)부터 2023년(1~4월)까지 전국 주요 전통시장 15곳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2023년에 발생한 매출이 2019년 같은 기간에 발생한 매출의 149%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상승 바탕에는 기성세대 외 MZ세대의 전통시장 유입이 깔려 있다.
많은 시장 중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시장은 충남 예산시장이다. 백종원 더본 코리아 대표와 협업해 새롭게 단장한 예산시장은 복고 감성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예산군에 따르면 2024년 1월 한 달 동안 3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예산시장을 방문했다. 이는 2019년 대비 2023년 MZ세대 고객의 방문 증가율이 934%에 달한 수치다. 또 휴가철, 해외여행 대신 ‘촌캉스(농촌+바캉스)’를 떠나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시골 생활을 체험도 MZ세대 사이에서 유행 중이다.






할매 입맛이 이제는 MZ픽

힙 트래디션 열풍은 놀거리에서 그치지 않고 음식, 굿즈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그중 흑임자, 약과, 팥 등 전통 먹거리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다. 전통 디저트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약과는 다양한 식품업계에서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리뉴얼하며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국민 간식이 됐다. 약과 외에도 팥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면서 지난겨울에는 길거리 붕어빵 판매점 위치를 찾아주는 스마트폰 앱이 등장하기도 했다.
약과로 시작된 전통 간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크룽지, 양갱, 개성주악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개성주악은 고려 시대 개성 향토 음식으로 개인이 만들기 어려운 전통 한과임에도 SNS를 통해 레시피가 공유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관련, 현재 인스타그램에 ‘개성주악’ 검색하면 4만 8,000여 개의 게시물이 뜰 정도다. 전통 한과가 이만큼의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MZ세대의 특성과도 관련 깊다. 개성 있고 특이한 문화를 향유하는 MZ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를 오히려 새롭게 인식해 고려 시대 디저트인 개성주악 등에도 흥미를 갖는 것이다. 힙 트래디션 관련 먹거리는 디저트뿐만 아니라 주류로까지 번지고 있다. 소주나 맥주보다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국내산 재료를 쓰고 풍미가 좋은 전통주로 눈을 돌리고 있는 MZ세대의 소비 취향에 맞춰 주류 업계에서는 위스키 대신 전통주를 이용한 하이볼 제품을 출시해 MZ세대의 입맛을 저격하고 있다.






굿즈 사러 박물관 간다

힙 트래디션 열풍에 따라 전통문화를 활용한 굿즈도 인기다. 국립박물관의 굿즈 스토어 ‘뮷즈’에서는 텀블러, 손수건, 우산 등 국가유산을 누구나 가깝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판매 중이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다.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은 구리로 만들어 도금한 삼국시대 말기의 불상이다. 이 제품은 특히 유명 아이돌이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통 굿즈에 대한 인기가 늘면서 관련 상품 매출액도 늘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국가 유산 상품 매출액은 힙한 감성으로 재탄생한 굿즈의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액인 149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계속해서 다양한 굿즈를 출시 중이다. 최근에는 김홍도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비를 모티브로 한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를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도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하며 SNS에서 큰 화제를 끌었고 지금은 예약 판매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는 상태다. 또 스마트폰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사이에서 케이스티파이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콜라보한 ‘유물 디자인 케이스’가 인기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연령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출시 첫날부터 컬래버레이션 시리즈 가운데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


이미지 출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미지 출처 ©케이스티파이




익숙함에서 나오는 세련미

예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한 멋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그랜파코어룩은 할아버지의 옷장에서 꺼낸 듯한 스타일을 뜻한다. 발레코어, 바비코어 등 뚜렷한 테마를 가진 패션이 인기를 끈 가운데 그랜파코어룩 역시 많은 패셔니스타의 시선을 사로잡는 중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무난한 아이템들, 그리고 실제 조부모의 옷들로 스타일링을 완성할 수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은 것이 특징이고 실제로 할아버지의 옷을 재활용해 연출할 수도 있어 최근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들의 소비 흐름과도 부합한다. 그랜파코어 스타일 대표 아이템은 고전적인 느낌의 케이블 스웨터나 오버핏의 옥스퍼드 셔츠, 럭비 셔츠 등으로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 데일리룩으로 연출하기에도 용이하다. 이와 관련 이랜드월드에 따르면 스파오의 남녀공용 럭비 스웨트셔츠의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케이블 스웨터류와 오버핏 옥스퍼드 셔츠류 매출도 각각 27%, 57% 성장했다.
이러한 트렌드에 힘입어 국가유산에서 기업 행사를 여는 일도 많아졌다. 젊은 세대가 한옥이나 국가유산을 힙한 장소로 여기기 때문에 기업들이 제품을 홍보하거나 새롭게 런칭할 때 국가유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3월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 2024크루즈 패션쇼’가 대표적인 예이다. 전통문화를 단순히 옛것으로 보지 않고 트렌드와 접목해 생활 속에 녹여내고 있는 MZ세대들.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 유행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전통문화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