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배우다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지 4년 차. 거의 매주 붓펜으로 작업을 하지만 장성윤 지점장의 자택에는 작업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액자나 카드 등은 대부분 누군가의 선물로 전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를 처음 배울 때부터 목적이 분명했어요. 주변에 조금 더 특별한, 정성을 담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실제로 수업 초반부터 작업한 카드 등을 바로바로 선물로 전달했어요. 그래서 막상 집에는 가족에게 준 선물과 습작 몇 장 말고는 작업물이 없네요(웃음).”
장성윤 지점장이 처음 캘리그라피를 배운 것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월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지면서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수업에 도전해 보게 되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글씨 쓰기, 특히 붓글씨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서예학원을 다녔는데, 대회에도 몇 번 나갔어요. 붓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하고 좋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펜글씨를 배우기도 했죠.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 수업이나 듣고 싶지 않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수업을 듣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본 것 같아요.”
붓글씨 수업을 기본으로 서체, 수업 방식 등 여러 방면을 고려한 끝에 청주에서 하는 캘리그라피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자택이 오창에 있는 장성윤 지점장은 매주 운전해 청주를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이 있었는데, 편한 시간에 방문해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저와 아주 잘 맞았어요. 그래서 6개월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목적이 명확해서일까? 수업을 듣는 동안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정식으로 완성한 첫 작품은 어버이날 문구였다. 사랑과 감사의 글귀를 적어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수업을 들은 지 채 한 달도 안 된 시기였다. 처음에는 구도 잡는 게 어려워서 클래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구도를 참고해서 자신만의 작업을 완성해 나갔다.
지금도 종종 다른 작업물을 보고 연습한다는 장성윤 지점장. 그동안 터득한 ‘캘리그라피를 잘하는 노하우’는 이렇다. 첫째는 ‘관심’이다. 원래 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두 번째는 ‘여유 있는 마음’이다. 글씨는 급하게 쓰면 마음과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템포를 늦추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많은 ‘연습’이다. 타인의 작업물도 충분히 보고, 실제로 많이 작업을 해봐야 자신만의 스타일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귀와 함께 마음을 전하다
우리는 살다 보면 참 많은 기념일을 마주한다. 기념일이 아니어도 작은 선물로 소소한 마음을 주고받을 일도 많다. 캘리그라피를 배운 덕분에 지점에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선물 문구는 장성윤 지점장의 담당이 되었다. 고객 이외에도 인사이동으로 헤어지거나 승진하는 주변 직원들의 축하 문구 또한 그가 담당한다.
“사실 제가 쓴 글씨를 ‘작품’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끄러워요. 하지만 주변에 작은 선물을 할 때 캘리그라피로 정성 들여서 쓴 카드를 곁들이는 것만으로 ‘마음’을 담는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제가 직접 써서 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감동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정말 뿌듯하죠.”
장성윤 지점장은 특히 캘리그라피로 적을 문구를 고르는 시간을 좋아한다. 선물 받는 사람에게 어울리거나 상황에 맞는 글귀를 찾는 과정 동안 그 사람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된다고.
“제 종교가 기독교라서 관련 문구를 자주 적긴 하는데, 그런 선물은 대부분 같은 종교인에게 드려요. 비종교인에게는 생일이나 진급, 크리스마스 등 선물의 의미와 관련된 문구를 찾아서 적어 드리곤 하죠. 얼마 전 지점에서 전출간 직원에게 ‘자신의 그릇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의미의 문구를 적어서 선물했어요.”
캘리그라피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크게는 액자를 만들 수도 있고, 카드를 멋스럽게 꾸미기에도 좋다. 화분이나 책 등 간단한 선물을 할 때도 손 글씨로 꾸민 카드를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선물이 멋스러워진다. 캘리그라피 선물을 자주 하다 보니 임의로 낙관까지 만들었다.
“설명 없이 카드를 드리면 가끔 기성품을 구입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직접 손으로 쓴 건 알아주셨으면 해서 요즘은 ‘제가 직접 썼어요’하고 알리기도 해요. 최근에는 제 이름 ‘윤’ 자를 활용해 낙관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는데, 캘리그라피 선생님께 들어보니까 보통 지우개를 파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낙관을 찍고 나니 손으로 작업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나더라고요. 그런데 여름이 되니 지우개가 녹아서 정식으로 도장을 파서 제작할까 고민 중이에요(웃음).”
4년 동안 캘리그라피를 유용하게 활용하다 보니 추가로 배우고 싶은 수업도 생겼다. 작업할 때 글귀를 꾸며주는 그림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이 이번에 ‘어반스케치’라는 클래스를 개설하셨더라고요. 특정 장소에 가서 그 모습을 스케치로 남기는 수업인데 정말 들어보고 싶어요. 수업을 듣고 나면 캘리그라피 작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천히 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에 ‘마음’이 담긴다고.
내 마음까지 치유하는 캘리그라피
붓글씨를 쓰는 시간은 장성윤 지점장에게 명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작업하는 동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선물할 사람을 떠올리며 그에 맞는 문구를 찾고 글귀에 어울릴 그림을 고른다. 그렇게 구상을 하고 천천히 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에 ‘마음’이 담긴다고.
“우리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또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잖아요. 캘리그라피도 비슷한 효과가 있어요.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죠. 어찌 보면 명상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좋아서 꼭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도 자주 작업을 한다는 장성윤 지점장. 복잡한 재료도 필요하지 않다. 굵기별로 붓펜 세 가지 정도와 12색짜리 휴대용 물감과 워터펜만 있으면 작업이 가능하다.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간단한 재료지만 표현할 수 있는 폭은 한없이 넓다. 필요할 때는 종이만 추가로 준비한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카페에 재료를 챙겨 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은행 일이라는 게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는 일도 있을 수 있고요. 얼마 전에 직원권익보호관이 와서 검사했는데 저는 스트레스 지수가 아주 낮게 나오더라고요. 아무래도 캘리그라피 작업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바로바로 해소해 주니까요. 꼭 캘리그라피가 아니어도 좋아요. 스포츠, 책, 음악 등 나만의 마음훈련을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꼭 가져보시라고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