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발전은 소통에서
소은 씨와 도영 씨는 오랜 친구 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서로를 지지하는 든든한 존재로,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깊이 나누면서 지내왔다. 그런데 최근 거칠게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다. 도영 씨가 소은 씨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자주 어기자, 소은 씨의 심기가 편치 않은 것이다. 평소 활동적인 도영 씨는 신입사원인데도 벌써 여러 모임에서 초대를 받은 데다, 학교 선후배 모임마저 잡힌 것이다. 소은 씨는 그가 바쁜 회사 생활로 그럴 수 있다고 여겼지만, 사과조차 없는 점에 서운함을 느꼈다. 이에 소은 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너 요즘 변한 거 알아? 내게는 관심도 없나 봐. 약속도 어기고. 너무 실망이다.”(소은)
“그러니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지금 신입이라 그런지 진짜 바쁘네. 이해해 줘라.”(도영)
소은 씨가 그의 말을 낚아채며 말한다.
“나는 안 바쁜 줄 알아? 난 너랑 한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왜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하는 거야?”(소은)
“너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 내가 바빠서 그런 것뿐이야.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도영)
“너는 늘 그렇게 변명만 하지.”(소은)
이 대화는 무척 거칠다. 처음엔 작은 물결이 이는 것 같지만, 곧 폭우가 내린 뒤 계곡에 흐르는 격류처럼 변하고 있다. 부딪쳐 튀고, 요란한 소리가 난다.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맺는 데 필수적인 활동이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상대는 듣고, 듣는 이가 말하면 상대는 들어준다. 둘이 앉은 작은 방안에 좋은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듯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을 읽으며,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 좋은 대화다. 그런 대화가 좋은 관계를 만들고, 함께하는 일을 원활하게 한다.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향기가 나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경청’이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래야 오해를 피하고, 서로 공감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해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Listening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 좋은 대화다. 그런 대화가 좋은 관계를 만들고, 함께하는 일을 원활하게 한다.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것
경청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또 상대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눈을 보며 존중과 신뢰를 전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필요할 때는 질문을 해서 부족한 이해를 보충하는 것도 좋은 경청의 자세다. 그런데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이 충분히 말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대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어 신뢰가 쌓인다. 인내심을 잃고,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즉각 반응하면, 이를 테면 상대의 말에 비난하거나 판단하면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듣는 사람은 비난이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반격하거나 변명을 하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
소설 <모모>에서 배우는 인내
소은 씨와 도영 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소은 씨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텐데 친구가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반복되다 보니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자신의 기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에서 오는 불편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에게 지키지 못한 이유를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은 씨는 도영 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불편한 자신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다 보니 도영 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듣는 행위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도영 씨도 소은 씨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충분히 설명하고, 벌어진 상황에 대해 사과하기보다는 평소 친하게 지낸 소은 씨가 자신을 잘 이해해줄 것으로 여기고 표현하지 않았다. 친한 관계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깊기 때문에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관계에 큰 영향이 없을 거라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오해다.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작은 시골 마을 변두리 낡은 원형극장 터에서 사는 왜소한 소녀 모모가 주인공이다. 그 모모에게 갖가지 고민과 문제를 갖고 사람들이 매일 찾아온다. 모모는 그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모모를 만난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모에게 가보라”고 말한다. 모모의 능력이 바로 경청이다. 신뢰에 찬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성껏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 말이다.
Patience
모모의 능력이 바로 경청이다. 신뢰에 찬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성껏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 말이다.
나를 지켜야 인내도 단단해진다
인내심은 평온을, 성급함은 후회를 거둔다고 한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서로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지만,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인내력의 약화는 여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있을 때, 인내력이 쉽게 소진된다. 이럴 때는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 반복적인 실패나 좌절을 경험하면 그 상황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려 다른 이와 마주할 때 인내심이 없어진다.
특히, 사람은 교만해졌을 때 인내력을 내려놓기 쉽다. “내가 그토록 참았는데 더 이상 참을 필요가 뭐 있어”, “당신이 감히 나를?”, “네가 나를 좌절시켜?”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생각이 언어가 되어, 걸러지지 않는 말을 하게 된다. 그 순간을 참고 견디면서 나아가야 한다.
인내는 우리 삶에 가장 요구되는 성품이자 이루기 어려운 성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내력 키우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엔 인내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조차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난다. 무언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로 분노와 화가 생길 것이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고,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하고, 더 이상 안 보고 싶다고 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코 이뤄지는 게 없다. 인내하지 않으면 자포자기하고,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지기 쉽고, 남 핑계, 실패, 원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은 인내심을 키우는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Communication
인내력 키우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엔 인내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
첫째, 자신의 경청 능력을 살펴보자.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끝까지 듣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차분히 질문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상대방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지, 제3자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해보자. 그러면 상대의 감정도 잘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다. “친구가 여러 번 약속을 지키지 못하니 내 마음이 너무 외롭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어”라고 얘기하면 상대도 나의 감정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럴 때도 “도영이가 요즘 많은 일정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단짝인 내게 이해를 받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여길 수 있다. 인내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안정시키고, 신뢰를 쌓는 데 꼭 필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요소다.
셋째, 감사 일기를 써보자. 우리 삶에 기적과 같은 일도 있고, 소소한 행복을 주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잠들기 전, 감사할 몇 가지를 기록해본다면 감사하는 습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좋은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 우리를 더 큰 인내심을 갖게 할 것이다. 이때 기억할 것은 오늘 실수한 말들에 실망하거나 자책하면서 자신을 꾸짖지 않는 것이다. 실수나 실패에 대해 자신을 너무 비난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인내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오늘 그 상황에서는 나를 소극적으로 표현했구나”, “오늘은 실수를 두 번밖에 하지 않았구나”와 같이 자신을 돌보고 격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들여다볼 때 좋은 친구를 대하듯 친절하게 대하길 바란다. 이 모든 과정에 익숙해지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 순간을 참고 인내하다 보면 더 큰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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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박진영 작가 <단박에 통하는 전달력 수업>, <공감대화법>, <박진영의 말하기 특강> 등을 집필했다. 현재 공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이자 전남대학교 객원교수로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 올바른 소통이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