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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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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 속에 숨은 미래의 지혜
글 · 명로진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미래에서 온 기계가 과거로 가서 미래에 인류의 지도자가 될 인물 ‘존 코너’를 제거하려 한다. 1편에서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지도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존 코너의 어머니를 죽이는 설정이다. 시간의 흐름을 미리 알고 있는 어떤 존재(터미네이터와 기계들)가 과거로 가서 역사를 바꾸려 한다. 미래의 과거는 현재이므로 사건은 현재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삼국유사》 ‘기이편’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명로진 작가
배우 겸 작가. 쓰고 강의하고 여행하면서 산다. 세계 6대륙을 여행했으며 4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인문학과 글쓰기를 비롯해 아동, 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60권의 책을 썼다. 지금은 경기도 광명에서 ‘기파랑 문해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터미네이터와 김유신

김유신이 18세가 되어 검술을 익히고 화랑이 되었을 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백석이란 자가 무리에 들어왔다. 유신이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치려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는데 백석이 말했다.
“내가 공과 함께 고구려로 가서 먼저 정탐한 뒤에 일을 꾸미면 어떻겠습니까?”
유신이 기뻐하며 백석과 길을 떠났다. 영천에 이르러 고개에서 쉬는데 세 여인이 다가와 유신에게 “잠시 저희와 숲으로 들어가시지요”라고 했다. 유신이 여인들과 숲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신으로 변해 말했다.
“지금 적국의 간자가 공을 유인해 가고 있어 우리가 공을 말리려고 여기까지 왔소.”
김유신이 알았다고 하고 돌아와 백석에게 말했다.
“집에 중요한 문서를 두고 왔으니 다시 돌아가 가져와야겠다.”
집에 돌아온 유신이 백석을 묶어 놓고 취조하자 백석이 실토한다.
“나는 본래 고구려 사람이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라의 김유신은 우리나라 예언가 추남이었다’라고 했소. 추남은 고구려 왕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했는데, 죽으면서 ‘내가 죽은 뒤에 장군으로 다시 태어나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했소. 그날 밤 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김유신의 아버지)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곧 그대의 어머니오. 이에 신하들이 ‘추남이 유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말했소. 이런 까닭에 고구려에서 나를 보내 그대를 유인해 오도록 했소.”
김유신은 백석을 죽이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구려 사람들이 백석(터미네이터)을 신라로 보내서 미래에 고구려와 전쟁하게 될 신라의 명장 김유신(존 코너)을 미리 죽이려고 하는 이야기다. 혹시 <터미네이터>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삼국유사》를 읽었던 건 아닐까?



고전 속에 현재 있다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힌 문학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나 사서삼경은 3000년 가까이 사랑받아 왔다. 이렇게 오래된 책 속에 미래가 있을까? 고전은 오래된 책이지만 현재성이 있다. 기원전 5~6세기 사람들이 느꼈던 감수성이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구가 현재를 담고 있다면 현재의 우리가 읽는 텍스트 속에는 미래가 있지 않을까?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가 괴로울 때 내가 고전에서 위로를 얻는 방법이 있다. 《논어》나 《장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무 쪽이나 펼쳐 보는 것이다. 나는 이걸 ‘랜덤 힐링’이라고 부른다. 옛사람들이 점을 칠 때도 우연에 의지했다. 거북의 등을 태워 나온 무늬를 보거나 산가지를 뽑는 일의 결과는 인간의 계산 밖에 맡겼다.
오늘도 《논어》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자, 첫 번째 문구다.
“앵두나무꽃, 바람에 나부끼네. 어찌 그대를 사모하지 않겠소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구나.”
누가 이 노래를 부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랑한다면 어디인들 멀랴?” (자한편)
먼 곳에 사는 친구를 찾아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전이 내 마음을 읽었다. 그렇다.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랑한다면 어디인들 멀겠나.





사랑한다면 먼 곳이 없다

얼마 전 알게 된 20대 청년 희재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 있어?” (이런 거 물으면 꼰대인데….)
“네, 근데 좀 멀리 살아요.”
“어디 사는데?”
“브라질이요.”
“와~브라질?”
“예, 롱디(Long Distance 장거리) 연애죠.”
“이건 롱디가 아니라 거의 다른 행성 간 연애 아닌가? 하하하!”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희재는 공자의 ‘어디인들 멀랴’를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연인들아. 일산과 분당 사이는 먼 게 아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도 먼 게 아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랑의 농도가 문제다.



자기를 알리려면

두 번째 문구.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저절로 알려지기를 구하라.” (이인편)
나는 얼마 전 조그맣게 논술학원을 시작했다.
책도 많이 냈고, 대학 교수도 지냈고, 방송에도 나갔으니… 학원을 열기만 하면 학생들이 줄을 설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권리비에, 인테리어에, 보증금까지 거액을 쏟아부었는데도 학원은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빚 얻어 오픈한 학원이니 이자 대기도 벅찼다. 매달 말 돌아오는 임대료 내는 날이 두려웠다. ‘학원을 알려야 한다!’ 이게 요즘 내 좌우명이다. 절벽을 기는 심정으로 발로 뛰면서 판촉물도 돌리고, 광고도 하고 홍보도 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저절로 알려지기”를 구해야 한다. 다음 주부터는 밖으로 돌면서 알리려 하지 말고 지금 다니는 학원생 돌볼 생각을 하자.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하나라도 더 마음을 주자. 내 살길은 학원 문 안에 있다. 홍보와 마케팅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자님 말씀을 새겨들을 것. 다음 문구다.
“만약 주공처럼 훌륭하고 재능이 있다 해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태백편)
와, 정말 기가 막힌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다 생각해 놓고 쓰는 거겠지’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원고를 쓰는 어느 일요일 오후 12시 17분 현재, 내 책상 위에 놓인 《논어》를 아무렇게나 펼쳤을 때 이 문구가 나왔다면 믿겠는가. 우연은 때로 이렇게 소름 끼치는 필연이 된다.





겸손하고 관대하게

며칠 전 후배를 만났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그는 상반기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렸다. 열심히 일한 그는 회사에서 여름휴가 보너스를 받았다.
“근데 봉투를 열어보니까, 5만 원짜리 여섯 장이 있더라고.”
“30만 원?”
“응. 내가 올린 영업실적이 얼만데! 나 이 회사 계속 다녀야 돼?”
“때려치워.”
《논어》에 보면 공자의 결단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위나라 임금 영공이 공자에게 “군대를 배치하는 방법을 아십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제사 지내는 법은 알지만 군대에 대한 일은 모른다”고 답한다. 그다음 문구가 충격이다.
“明日遂行(명일수행)”.
그다음 날 떠났다.
공자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아니다 싶으면 바로 떠나야 한다. 이런 결단은 우리의 몫이다. 오늘 생각하고 내일 떠나는 신속성.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미래는 돌아보지 않는 자의 것이다. 잠깐,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곧 있으면 보너스를 지급해야 할 시기다. 내가 챙겨야 할 아랫사람들이 몇 있는데 ‘얼마나 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저 글을 보니 찔린다. 이번에는 두둑이 줘야겠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지만 현재성이 있다. 기원전 5~6세기 사람들이 느꼈던 감수성이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구가 현재를 담고 있다면 현재의 우리가 읽는 텍스트 속에는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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