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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카툰으로 보는 역사

탁월한 정보 편집자
정약용

글 · 편집실 일러스트 · 유남영 참고 · 인사이트, 세계일보, 제주도민일보
방대한 정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일목요연하게 집대성했으며, 특히 조정의 신하로 일할 땐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정조대왕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엑셀’화했던 정리의 귀재였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 머무는 18년간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 권을 지은 대학자다. 수원화성 설계에 참여한 토목공학자이며, 축성 당시 지레와 도르래, 녹로의 원리를 연구해 거중기를 고안한 기계공학자, 시인 겸 문예비평가, 홍역을 다룬 의학서 <마과회통>을 편찬한 의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집필 분야는 행정, 교육, 역사, 법, 경전 등 요즘으로 치면 ‘전방위 인문학자’인 셈이다. 더욱이 유배를 간 상황에서 참고할 서적이 넉넉했을 리 없고, 다른 학자들과 교류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거둔 성과는 경이로움을 넘어선다. 임금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암행어사와 곡산도호부사, 형조참의 등 벼슬을 지내면서 다녀온 여러 곳의 풍속과 정취, 사회 제도의 모순을 시문과 기록으로 남겼는데, 오늘날 조선 후기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학문은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약용은 방대한 정보를 한데 모아 하나의 체계로 묶는 ‘집대성’이란 장기를 발휘해 실학을 완성했다. 늘 책을 가까이했는데, 깊고 꼼꼼히 내용을 따져 읽는 ‘정독’과 독서 중 깨닫거나 생각한 것을 재빨리 적어 두는 ‘질서’, 중요한 구절을 받아 적는 ‘초서’ 등의 독서법은 그의 자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리와 기록에 관한 일화는 더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 식목 사업을 마무리한 뒤 신하들에게 심은 나무는 얼마나 되는지, 어느 고을이 많이 심었는지를 물었는데, 신하 무리 중 누구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정조는 정약용을 시켜 사후 보고서를 쓰게 했다. 정약용은 이 작업의 핵심 가치를 ‘나무는 몇 그루인지’, ‘어느 고을이 가장 많이 심었는지’로 파악했다. 고을을 작은 단위로 나눈 후 표가 그려진 종이를 내주며 세로 칸엔 날짜, 가로 칸엔 나무 종류를 적게 했다. 이를 1년 단위로 집계했더니 2~3일 만에 한 장의 표로 정리됐다. 정약용은 각 고을에서 모인 공문들을 한 장의 표로 압축해 정조에게 보고했고, 정조는 “책 한권 이내로 정리하라 했더니 종이 한 장으로 정리했구나.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은 핵심을 파악하는 힘이 되었고, 자신이 배운 공부를 통해 다른 분야와 접목하는 공학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정약용이 몸소 보여준 집대성의 근본은 정리하고 메모하기를 꾸준히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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