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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특집

IBK가 만나다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가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뮤지션 고영배

글 · 편집실 사진 · 김성재
‘하루 종일 걷다가 보면 가장 행복한 걸 만나게 되길. 별빛처럼 소중하게 작은 빛이 선명하게 보여.’
밴드 소란의 노래 ‘우리, 여행’ 가사처럼, 첫 번째 책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를 펴낸 고영배의 이야기처럼 행복이란 작고도 선명하게 보이는 빛 같아서 가닿을 방법을 궁리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Q

첫 번째 에세이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를 펴냈죠.

출판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고사했어요. 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죽 이야기해왔으니 책으로 쓸 것이 더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편집자가 말로 했던 것을 글로 옮기자고, 모든 사람이 제 말을 다 들은 건 아니지 않느냐는 거예요. 이미 들은 사람에게나, 처음 듣는 사람에게나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거란 말에 설득됐죠. 소란의 음악이나 방송 프로그램 속 모습, 언행에서 느껴지는 밝은 바이브를 어여쁘게 봐준 덕인 듯해요.



Q

‘밝다’는 것은 선량함, 포근함, 단단함을 갖춘 고영배만의 이미지를 가리키는 것일 텐데요. 그런 인상을 자칫 평범하다고 하지만, 요즘은 ‘선함’이 고유한 능력인 시대잖아요.

스스로의 장점이자 단점,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자연스러운 걸 추구한다는 이유로 이미지를 관리하거나 연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가정적인 나로 인정받고 싶어서 어떤 모습을 설정해놓고, 거기 맞춰 SNS를 꾸미거나 소속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죠.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담기는 대신 제 SNS는 난잡하고 일관성이 없어요. 하하. 책에도 밝고 행복한 모습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어요. 출판사나 소속사 등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자연스러움을 담는 데 동의하고 존중해줬죠. 솔직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으면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의 증거가 될 것이고, 앞으로 하는 음악에도 좋은 설명이 될 거라는 데 뜻이 모였어요. 그런데 게으른 완벽주의자 성향이라 집필할 때 애를 먹었죠.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마감이 임박해선 무라카미 하루키 작전으로 아침마다 일정 시간에 무조건 글을 썼어요. 그렇게 34편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나왔고요.



Q

가족 이야기나 개인사가 꽤 나오는데, 책을 읽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음악 활동이나 방송 출연하는 저를 보면서 가족들은 ‘노래 좋다’, ‘TV에 나왔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책은 처음이잖아요. 글 쓸 땐 보여준 적이 없는데, 책으로 ‘짠’ 놀라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이 글 쓰는 걸 구경하러 오면 매번 화면 가리기 바빴죠. 출간 후 아내, 첫째, 둘째에게 메시지를 써서 선물했어요. 아내는 너무나 좋아했고, 읽을 때마다 눈물 난다고 했어요. 둘째는 글을 못 읽지만, 안 주면 토라질까 봐 줬고요. 큰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밴드나 음악 얘기보다 가족에 대한 부분, 아빠의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보더라고요. 아이가 귀여운 게 쫙 펼쳐 읽으면 책이 헌다고 조금씩 열어서 봐요. 그렇게 보면 얼마나 답답해요. 또 제가 산타로 활동(!)하는 걸 아이가 눈치챈 듯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다 읽었다면 그 부분까지 알아버린 셈이죠. 모르는 척하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올겨울이 돼봐야 알 것 같아요.



Q

소란의 음악이 그랬듯 책에서도 솔직, 담백, 유쾌, 산뜻함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쯤 되면 ‘솔직과 담백’이야말로 인간 고영배를 이루는 성분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일관된 반응이 술술 읽힌다는 것, 내용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내겠다고 의도해서 쓴 건 아니에요. 그런 재주가 없기도 하고요. 특별히 잘 읽히게끔 기술적으로 쓸 줄도 몰라요. 그냥 편하게 말하듯이 쓰자는 생각이었어요. 단, 가르치려 하거나 자랑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왜냐하면 후회할 테니까요. 감정을 솔직하게 쓰고, 있었던 일을 적었기 때문에 훗날 쑥스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글 쓰는 입장이 됐다고 갑자기 교훈을 준다거나 허세를 부리면, 책에 그런 게 남으면 시간이 지나 후회할 것 같았어요. 말맛이나 글발, 문장력에 대해선 애초부터 내려놨어요. 문장을 수려하고 멋지게 쓰려고 했다가는 책을 못 낸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럼에도 신경 쓰면서 다듬어 쓴 문장들이 있는데, 출간 전 공개한 티저에 그 글을 뽑았더라고요. 재주를 부릴 수 없는 대신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것을 고르고 더는 건 정말 열심히 했어요.



Q

책에서 꿈꿨던 건 다 이룬 삶이라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한평생 운 하나는 기가 막히다 하면서 살았어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좋은 사람들, 좋은 멤버들, 좋은 동료들, 좋은 회사를 만나 함께 이뤘던 일이 가장 큰 운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통해 ‘근자감’이 생겼고요.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면서 뭣 모른 채 시작한 일들이 운 좋게 이뤄진 듯해요. 사람들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잖아요. 막상 해보면, 배우면 못할 게 없는데 말이죠. 인생이 이런 일의 연속이지 않나요. 내 영역이 아니다 싶어서 ‘쫄’면 결국 남의 일이 되죠. ‘이야,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나 한번 해볼까’ 발이라도 담그면 의외로 되는 것들이 많아요. 근자감에서 비롯한 시도와 성공, 성취가 자긍심이 되고 자존감이 돼요.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돼요.

글 쓰는 입장이 됐다고 갑자기
교훈을 준다거나 허세를 부리면,
책에 그런 게 남으면
시간이 지나 후회할 것 같았어요.



Q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해요?

정신이 힘들 땐 육체로 풀어야 한다는 걸 요즘 들어 실감해요. 주로 공연이 없을 때, 바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데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게 도움돼요. 땀 쫙 빼는 반신욕도 하고요. 능동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보려고 노력해요.



Q

세밑이 가까워지니 분주하면서도 헛헛해지잖아요. 이맘때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연말이 싱숭생숭한 이유 중 하나는 올해가 이렇게 간다, 한 살을 더 먹는 구나 같은 생각 때문이잖아요. 아예 능동적으로 새해 계획을 세워요. 내년에 하고 싶고 설레는 일을 생각하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공연 일정이 꽉 찬 연말보다는 공연이 끝난 1, 2월 무렵 싱숭생숭해지는데, 봄 공연을 구상하거나 합주를 해요. 공연을 기획할 때 물론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만큼 설렘이 커요. 어떻게 만들어서 사람들의 재미를 끌어낼까, 하는 설렘으로 공연 준비를 감당하는 거죠. 준비할 동안 쌓인 스트레스 대부분은 무대 위에 섰을 때 풀려요. 자급자족하듯이요.



Q

앞으로 계획은요.

11월에는 소란의 앨범이 나오고, 12월에는 소란의 공연이 있어요. 이런 일정과 더불어 늘 계획하는 건 어떻게 하면 팬들과 오래오래 공연 즐기면서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위 ‘국민 밴드’처럼 많은 사람 곁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음악을 오래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곧 목표예요.



고영배가 <with IBK> 매거진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책 제목 덕에 ‘행복’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행복을 정의하기보다 우리 곁의 행복을 만나고 건드리는 방법을 알려드려요. 바로 ‘호들갑’. 좋을 때 좋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행복을 확인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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