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문학의 수작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그의 수필
<처녀 해변의 결혼>을 통해 혼자만의 곰살궂고 느직한 휴식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비움과 느림에 눈뜬 ‘소확행’을 확실하게 즐긴 셈. 그는 여름이면 ‘독진’이라는 한적한 해변을 즐겨 찾아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수영과 백사장 산책을 즐기곤 했다.
“번잡하고 화려하지는 못하나 그 대신에 맑고 조촐한 그러므로 더 값있는 순결한 처녀지. 장개고개 이편 원수대로 뻗친 불역에는 인간의 발자취 하나 없는 맑은 모래가 아깝게 5리가량이나
터져있다. … (중략) … 가장 중대하고 긴요한 점은 그곳에서 나는 다른 해수욕장에서와 같이
귀찮은 해수욕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음이다.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닐었다.”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는 문단의 평답게 그의 문장은 마치 시인이 소설 쓰듯, 분위기를 잡는데 능숙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행간을 읽다 보면 마치 이효석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동영상 보듯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
“가슴을 벌리고 바닷바람을 숨 것 들여 쉬면 바다가 그대로 가슴속에 들어와 앉는 듯합니다.
여인의 수풀 속에 조그만 우주가 숨어 있듯이 바다에도 확실히 우주가 축소되어 들어앉은 듯
합니다.”
<해초 향기 품은 청춘 통신>을 통해 그가 밝힌 휴식이 가져온 효과를 묘사한 대목이다. 사실적 묘사보단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단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한 그의 문체에선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리며 현대인에게 휴식의 즐거움을 전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