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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발길 닿는 길(해외편)

4,000m 안데스산맥의
아슬아슬한 길

볼리비아 융가스 로드
Bolivia Yungas Road

글 · 사진 서영진 
남미 볼리비아는 안데스산맥에 기댄 내륙 국가다. 번잡한 도시와 호수, 사막이 해발 3,500m 이상 고지대에 들어서 있다. 볼리비아 최대 도시 라파스에서 안데스 산줄기 동쪽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융가스 로드’가 있다. 다운힐 마니아들에게 극한 체험의 성지로 추앙받는 융가스 로드는 ‘죽음의 길’, ‘데스로드(The road of death)'로 불린다.

‘죽음의 길’로 불리는 익스트림 코스

융가스 로드는 흥분과 숙연함이 함께 묻어나는 길이다. 융가스 로드의 출발지점 높이는 해발 4,700m. 안데스산맥 아래 코로이코(해발 1,200m)까지 내려서는 길은 고도차가 3,000m를 넘어선다. 안데스의 산기슭과 낭떠러지를 따라 아슬아슬 이어지는 폭 3m 도로는 자동차 사고로 매년 2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악명 높은 길이었다.

그 산악도로를 최근에는 익스트림 마니아들이 찾는다. MTB 라이더들은 헬멧과 안전점퍼를 착용한 채 낭떠러지 길을 자전거로 내달리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융가스 로드의 출발점은 해발 4,700m에 위치한 라 쿰부레, 도착점은 융가스 로드의 대표 마을인 욜로사 또는 코로이코다. 밴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지점에 다다른 전문 라이더들은 부상과 사고를 책임지는 각서를 쓰고, 안전교육을 마친 뒤 익스트림 라이딩에 나선다.

융가스 로드에는 약 60㎞ 구간의 구불구불한 벼랑길이 이어진다. 초반 30㎞ 구간은 포장도로이고 나머지 30㎞는 자동차의 통행조차 힘든 비좁은 비포장길이다. 라이더들에게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루트는 해발 3,500m 지점부터 시작되는 비포장 구간이다. 300~400m 낭떠러지에 안전펜스도 제대로 없고, 길 곳곳이 움푹 팬 흙길에서 긴장감은 극도로 치닫는다. 강렬한 진동과 전율만이 온몸을 관통한다.

몸의 떨림과는 별도로 안데스의 대자연은 묵묵하고 장엄하다. 내려서는 길목에서 융가스는 유유히 날씨와 풍광을 바꾼다. 해발 수천m 높이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안개가 끼는 일이 잦다. 급커브 길모퉁이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마주하는 안데스는 몽환적인 산악풍경을 빚어낸다. 내린 폭우는 곳곳에 폭포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라이더들이 수백m 벼랑길 위험을 무릅쓰고 버킷리스트에 융가스 질주를 올려놓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익스트림 다운힐 코스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융가스 로드

융가스 로드 추모의 십자가


벼랑 위 추모의 십자가와 코카 서식지

융가스 로드의 사연은 1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안데스를 관통하는 산악도로는 1930년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의 국경분쟁인 차코 전쟁 때 파라과이의 포로들을 동원해 처음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길을 놓을 당시의 열악한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자동차 사고는 반세기 넘게 이어졌다.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도로 곳곳에는 추모의 십자가가 세워졌다.

융가스 로드 시작점의 라 쿰푸레에는 대형 십자가와 제단이 마련돼 있다. 이곳 주민들은 매년 제단에 코카나무 잎과 양털 등 제물을 태우며 대지의 여신인 ‘파차마마’에게 기도를 드린다. 집으로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식은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의 악명을 딛고, 2006년 안데스와 동쪽 지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우회도로가 건설됐다. 차량들은 안전한 우회도로에 익숙해졌지만, 거친 지름길인 융가스 로드의 유혹은 숙련된 운전자와 익스트림 마니아들을 여전히 끌어들이고 있다.

융가스 일대는 안데스 원주민들에게는 오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해발 3,000m의 토양과 기후는 코카나무가 서식하는 천혜의 조건을 만들어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고산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코카잎을 껌처럼 씹거나 차로 마신다. 융가스 일대는 전통적인 코카 재배지로 정부로부터 허락받은 곳이다.

융가스 주변에는 코카나무를 재배하는 주민들이 거주하며, 이들은 삶터까지 벼랑과 계곡을 쇠줄 로프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이 로프는 최근에는 여행자들의 짜릿한 짚라인 체험에 활용되고 있다.

안데스 산맥의 길동무인 라마
안데스 산맥의 수도 라파스와 텔레페리코


하늘 아래 수도 라파스 & 티티카카 호수

융가스 로드를 찾는 마니아들은 하늘 아래 첫 수도인 라파스에 대부분 여정을 푼다. 볼리비아의 문화, 행정 수도인 라파스는 해발 3,600m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에 위치했다.

설산 일라마니 아래 적갈색 도시는 복잡한 소음과 매캐한 냄새로 아침을 연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무리요 광장, 스페인풍의 산프란시스코 성당은 도시의 심장부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산프란시스코 성당에 집결하며 스페인 식민시대의 건물을 간직한 하엔 거리, 주술사들의 부적과 코카나무 잎을 파는 전통시장이 골목 따라 이어진다.

라파스에는 ‘평화’라는 뜻이 깃들어 있다. 평지가 드문 라파스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도심 센뜨로를 기점으로 더 높고 비좁은 골목에 모여 산다. 한 도시의 저지대와 높은 삶터의 차이는 1,000m 달한다.

라파스의 꼭대기 마을 중에는 해발 4,000m에 둥지를 튼 곳도 있다. 킬리킬리 전망대에 오르거나 도심 상공의 케이블카 텔레페리코에 몸을 실으면 뒤엉킨 일상의 윤곽이 아득하게 그려진다. 텔레페리코는 메트로처럼 도시의 골목들을 그물처럼 연결한다.

라파스를 중심으로 볼리비아의 풍광들은 안데스를 따라 남북으로 흩어져 있다. 북쪽 티티카카 호수는 남미에서 가장 큰(8,372㎢) 호수로 해발 고도가 3,810m에 달한다. 고대 잉카인들은 티티카카를 ‘태초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숭배해 왔다. 티티카카 호수를 낀 코파카바나 마을에서는 중절모풍 직물 모자를 쓴 전통 아이마라족 여인과 흔하게 마주친다.

라파스 남쪽에는 해발 3,680m 고지대에 들어선 세상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 우유니가 기다린다. 약 1만 2,000㎢의 흰 사막은 100억 톤 넘는 소금을 품고 있으며 비가 오는 우기 때면 지평선에 하늘을 담아내는 숨 막히는 풍경을 빚어낸다. 소금 캐러밴들의 짐꾼이자 안데스의 낙타인 ‘라마’가 출현하며, 소금으로 지은 소금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 우유니 인근 화산이 빚어낸 호수에서는 플라멩코와 조우하는 황홀한 시간도 마련된다.

라파스 골목의 볼리비아 여인
우유니 인근 호수의 플라멩코

소금과 지평선을 품은 우유니 사막


융가스 로드 다운힐

융가스 로드는 약 3,000m 고도차, 60㎞ 거리를 산악자전거(MTB) 등 전문 장비로 달리게 된다. 다운힐 중에 죽음의 코너, 진흙코스, 붉은산 전망대 등을 거치며 산후안 폭포에서 점심을 먹는 여정으로 꾸며진다. 포장구간과 비포장도로가 섞여 있으며, 비포장 구간에서는 폭우로 결손된 도로가 있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라파스 등에서 투어신청을 하며, 밴으로 자전거를 실어 출발지점까지 이동한다. 자전거의 상태와 장비, 이동차량에 따라 투어 비용이 달라진다. 전문 라이더들의 참여가 가능하며 이동시간까지 고려해 라이딩에 하루를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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