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걷기는 말 그대로 첨벙첨벙 계곡을 걷는다.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멋진 계곡을 첨벙첨벙 걷는 게 물길 트레킹이다. 걷는 요령은 튼튼한 등산화나 아쿠아슈즈를 신은 채, 발목이나 종아리쯤 차는 물길을 걷게 된다. 계곡은 미끄럽기 때문에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면서 걷는 게 정석이다. 물살이 세거나 지형이 험한 구간은 우회가 필수다.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기에 창의성이 요구된다. 때론 계곡에 몸을 담글 수 있다. 자연스럽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홍천의 공작산은 높이보다 품이 넓은 산이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산세인데, 왼쪽 날개 품에 수타사계곡이 안겨 있다. 수타사 주변으로 홍천군에서 만든 수타사 산소길이 나 있다. 숲길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산책 코스로 가볍게 걷기 좋은 길이다.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은 수타사에서 상류 방향으로 약 8㎞쯤 떨어진 노천1교부터 계곡을 따라 수타사까지 걷는다.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게 좋다. 다리에서 이어진 둑길을 10분쯤 내려가 작은 농가를 만났다. 비닐하우스가 있고 나무에 그네를 달아 놨다. 여기서 과감하게 계곡으로 들어간다. 시나브로 신발이 젖고 물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물에 들어가기 전의 걱정은 야릇한 흥분으로 바뀌었다. ‘콸콸~ 쏴~ 우당탕’ 맑은 계곡은 여기저기서 거친 숨을 내쉰다.
일행 중 두 사람이 넘어졌다.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계곡 안에 이끼가 껴 미끄러운 곳이 군데군데 있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야 한다. 잠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살이 거친 구간을 지나 바위 위에 올라서자, 앞쪽으로 모래가 깔린 잔잔한 계곡이 펼쳐진다. 같은 계곡인데도 어떤 곳은 거칠고 어떤 곳은 낙원처럼 고요하다. 쌓인 모래를 지그시 지르밟는 느낌이 통쾌하다.
바위에 돌단풍이 가득한 수려한 암반이 나온다. 여기가 수타사계곡의 절경인 귕소다. ‘귕’은 구유를 말한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 여물통이다. 미끈한 암반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길고 거대한 구유 같다. 물과 바위 그리고 시간이 만든 걸작이다. 귕소는 하류 쪽에 하나가 더 있다.
귕소를 지나면 계곡 풍광은 더욱 수려해진다.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툭’ 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안의 근심이 끊긴 소리다. 근심은 스르르 물에 풀려 아래로 흘러간다. 내 인생도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길 바라본다.
계곡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
다. 다슬기 무리가 물가 바위에 붙어 있다. 잠시 다슬기해장국이 떠올랐지만, 잘 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물속에서 꼬물거리는 무당개구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흰뺨검둥오리 가족도 만났다. 어미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여덟 마리 새끼의 귀여운
몸짓에 웃음이 절로 났다.
신봉교가 가까워지면 물살이 거세다. 이곳은 계곡
오른쪽의 오솔길로 우회해야 한다. 수풀이 우거졌지만,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한동안 산길과 수로를
번갈아 가면 도로를 만난다. 신선의 세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다. 신봉교를 지나면 ‘둘레길
쉼터’란 제법 큰 건물이 보인다. 평일은 닫았지만,
주말과 성수기에는 영업한다. 잠시 논길을 지나면
호젓한 숲길이 나온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귕소 출렁다리를 건너면 수타사 산소길로 접어든다.
출렁다리 아래쪽의 귕소는 꼭 들러봐야 한다.
설악산 계곡처럼 매끈한 암반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젖은 신발 대신 여분으로 가져온
운동화로 갈아 신으면 금상첨화다. 이제 물에
빠질 일이 없다. 휘파람 불며 조붓한 산길을
따르면, 커다란 너럭바위인 용담 위에 올라선다. 바위 아래로 작은 폭포와 드넓은 소가 펼쳐진다. 수타사계곡의 절경 중 하나인 용담이다. 바위 아래 박쥐굴에서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쏴~ 거친 물이 쏟아지는 용담의 작은 폭포를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라미로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다가 폭포에 휩쓸려 사라진다. 제 몸을 비튼 탄력으로 튀어 올라 몸이 부서져라 장벽 같은 폭포에 부딪히는
모습이 안쓰럽고 감동적이다.
공작교를 건너면 수타사 경내로 들어선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신 법당으로 1636년(인조 14)에 공잠대사가 중건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부재 간의 비례가 잘 잡혀 있고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조선 후기 불전의 대표작이다. 수타사와 수타사 생태숲공원을 느긋하게 둘러보며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코스는 노천1교~귕소~신봉교~수타사, 거리는 약 8.5㎞,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노천1교~신봉교 약 6㎞ 구간이 무주공산의 비경 지대다. 물길 걷기는 이 구간이 제격이다. 신봉교~수타사 구간은 수타산 산소길이 나 있어 걷기 편하다.
수타사에서 차로 6분 거리인 민선식당(033-436-1452)은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 요리를 내오는 40년 전통의 숨은 맛집이다. 두부전골과 두부지짐을 잘하며 손수 차린 반찬들도 다 맛있다.
단체나 가족은 수타사계곡 앞에 자리한 둘레길펜션(010-3751-3422)이 좋다. 홍천 시내의 화양강호텔(033-435-1000)은 시설이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