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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카툰으로 보는 역사

이항복의 소원

글 · 염세권 글 · 백정석
어린이 위인전에서 권율 대감의 방문에 주먹을 넣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이항복은 어려서부터 그 생각의 깊이가 또래와 달랐다.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항복의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권율은 자신의 방 창호지를 뚫고 주먹을 불쑥 넣고는 “이 손은 누구 손입니까”하고 물었던 이항복의 품행이 더 알고 싶어 그가 있는 서당을 찾아갔다. 권율이 왔다는 것을 눈치챈 학동들은 옷차림과 몸가짐을 정돈하고 글을 읽고 있는데, 이항복만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편하게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권율은 학동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고, 학동들은 ‘고관대작이 되어 영예를 누리고 싶다’, ‘천군만마를 거느린 장군이 되고 싶다’ 등의 소원을 말했다. 다만 이항복만은 아무런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궁금증이 생긴 권율이 소원을 재차 묻자 이항복은 “쇠짚신 한 짝이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권율이 황당해하며 왜 하필 쇠짚신이냐 물으니, 이항복은 “지금 제 앞에 있는 어르신의 입에 넣어서 그 입을 좀 다물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벼슬을 지내고 있는 권율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말이었지만, 이항복의 말에는 큰 뜻이 담겨 있었다. 바로 ‘사람마다 소원이 다 다르기 마련인데 남의 소원을 안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라는 뜻이자, ‘당신이 내 소원을 안다고 해도 이뤄줄 수 없을 정도로 내 그릇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권율은 이항복의 말에 감탄했고, 이항복은 후에 권율의 사위가 되었다.


이항복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56~1618).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필운(弼雲).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로 활약했으며, 뒤에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에 인목 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저서에 ≪백사집(白沙集)≫, ≪북천일기(北遷日記)≫, ≪사례훈몽(四禮訓蒙)≫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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