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일출 맞기는 강문해변이 제격이다. 주변에 숙소가 많아 아침 산책으로 가볍게 걷기 좋다. 강릉의 바다는 날이 추울수록 검푸른색으로 일렁거리는데, 특히 일출 전이 가장 아름답다. 붉은 띠가 수평선에 걸린 일출 전의 적막한 순간은 태초의 시간처럼 아득하다. 시나브로 해가 봉곳 떠오르면 순식간에 만물을 비추고, 따뜻한 아침 해를 받는 사람들의 얼굴도 빛이 난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뜨는 해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보자.
강문해변에서 경포호가 지척이다. 잔잔한 호수에 철새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호수 건너 어깨동무한 장정들처럼 백두대간이 흘러간다. 선자령에서 황병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눈을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은 강릉만의 겨울 풍경이다.
경포호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을 묻는다면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이라고 답하고 싶다. 울창한 솔숲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 건물인 허균·허난설헌 생가가 나온다. 허균은 <홍길동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의 누이 허난설헌은 비운의 천재로 뒤늦게 알려졌다. 난설헌은 시대를 잘못 만나 재능을 피우지 못하고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시는 명나라 시인 주지번이 중국에서 간행한 <난설헌집>으로 극찬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널리 애송됐다. 허난설헌의 시 구절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경포호를 한바퀴 돌아 경포대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선자령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 중 하나다.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 눈부신 설경이 펼쳐진다. 출발점인 옛 대관령휴게소를 떠나면 곧 국사성황사를 만난다. 대관령 산신을 모시는 유서 깊은 공간으로 강릉단오제가 여기서 시작한다.
국사성황사를 지나면, 길은 어머니의 품속으로 고개를 묻는 아이처럼 산속으로 파고든다. 거대한 전나무가 사라지면 자작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눈부신 흰 나무껍질을 가진 자작나무는 눈과 어울려야 제맛이다. 자작나무가 참나무로 바뀌면서 숲의 호젓함은 절정을 이룬다.
능선에 올라서자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넓은 임도가 따르면 펑퍼짐한 선자령 정상에 닿는다. 북쪽으로 곤신봉, 매봉을 지나 소황병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에는 하얀 풍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시퍼런 동해가 찰랑거린다. 흰 능선과 풍차, 그리고 푸른 바다의 빛깔이 잘어울린다.
하산은 남쪽 능선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오면 된다. 새봉전망대에 서면 푸른 바다를 거느리는 강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대천과 경포호를 보고 있노라면 “아~ 강릉에 가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겨울 주문진항을 제대로 보려면 이른 아침에 찾는 것이 좋다. 조업 나간 어선이 들어오면 항구는 분주해진다. 경매장 바닥에는 복어, 임연수어, 도치, 대구 등이 눈을 껌뻑껌뻑 뜨며 새 주인을 기다린다. 경매입찰표에 값을 적는 중매인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오징어는 배 앞에서 경매를 진행하고, 낙찰자가 펄떡펄떡 뛰는 오징어를 직접 가져간다. 입찰표를 머리에 단 문어 한 마리가 탈출해 바닥을 기어보지만 곧 잡히고 만다. 주문진항은 살아 있다. 추울수록 겨울철 항구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2023년, 새해가 뜬 강릉 여행은 어부들의 삶이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항구에서 마쳐본다.
강릉 해파랑길은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책 코스로, 걸음걸음 동해와 호수의, 해송숲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중 39코스 바우길 05구간은 총 길이는 16.1km로 가벼운 걸음으로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경사가 낮아 산책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