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도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독서습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세종은 셋째로 태어나 왕위를 계승할 신분이 아니었고 뒤늦게 세자 책봉 후 같은 해에 양위를 받아 22세에 즉위했다. 정조는 8세가 되던 해에 왕세손에 임명되어 25세에 영조가 승하한 후 조선의 임금 자리에 올랐다. 다시 말해 세종은 왕세자 교육을 따로 받지 못했고, 영조는 연령에 맞춰 소학, 대학, 시경, 성학집요 등의 책을 배우며 조선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태종은 충녕(세종)에게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할 뿐이다.” 라고 말했다. 이는 셋째로 태어났기에 정치적으로 할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충녕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시나 서화를 즐기면서 평범한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충녕이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는다는 보고가 잇따르자 태종은 혹시 모를 정치적 야심을 경계해 충녕에게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소설만 즐겨 보는 첫째 양녕과 달리 세종 충녕은 성리학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역경, 주역 등 사서삼경을 통달했다.
정조 또한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음식을 마련해 기쁨을 표했다는 기록도 있다. 독서를 좋아하던 습관은 글쓰기로 이어져, 일기인 <일성록>을 쓰고 직접 지은 글을 모아 엮은 <홍재전서>라는 방대한 문집을 남겼다. 이러한 독서 습관을 통해 정조는 전에 없던 문화사업을 펼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