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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발길 닿는 길(해외편)

영혼을 향한 깨달음의 길
스페인 산티아고

글 · 사진 진우석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을 말한다. 산티아고가 목적지인 여러 순례길이 있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길이 ‘프랑스 길’이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고 스페인 북부 지역을 가로질러 산티아고까지 약 800㎞ 이어진다.

나만의 특별한 순례길을 위하여

왜 사람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열광할까? 저마다 아픔을 간직하기 때문은 아닐까. 순례자들은 한달쯤 고된 길을 걸으며 시나브로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받는다. 중세 사람들이 속죄의 이유로 순례길을 걸은 것과 많이 달라졌다. 통계에 따르면 종교적 이유로 걷는 사람은 전체 순례객 중 25%에 불과했다. 지금은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으로 순례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길은 약 800㎞, 32~35일쯤 걸린다. 전 코스를 완주하면 좋겠지만, 누구나 여유로운 일정과 체력을 가진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나만의 순례길을 만드는 것이다. 누구는 걸어서,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심지어 당나귀와 동행하기도 한다. 날씨가 안 좋거나 힘든 구간은 점프해도 된다. 도보 순례는 100㎞ 이상만 걸으면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순례의 출발점인 생장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시골 마을이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는 게 순서다. 여권은 순례자임을 증명한다. 여권으로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있고, 각 장소에서 도장을 찍어 순례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걷기 좋은 계절은 봄가을이다. 여름은 뜨거워 힘들고, 겨울은 우기라서 더욱 고되다.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다

첫날이 고비다. 3,000m가 조금 넘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까지 25.3㎞ 걸어야 한다. 대개 나폴레옹 루트를 따르는데, 날씨가 좋다면 큰 무리는 없다. 중간쯤인 오리손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한발짝 한 발짝 걷다 보면 어느새 시야가 넓게 열리면서 양과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고갯마루에 닿는다. 초원에 주저앉아 물결치는 피레네산맥을 지긋이 바라보는 맛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산을 내려와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동료 순례자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설렜던 첫날이 마무리된다.

5일 차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 가는 길에 바람이 세차게 부는 ‘용서의 언덕’을 오른다. 언덕에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순례자의 철제조각상이 서 있다. 조각상에는 스페인어로 ‘바람이 별의 길과 만나다’라고 쓰여 있다. ‘별의 길’은 순례길을 의미한다. 언덕에 부는 바람과 순례길을 만난다는 시적인 표현이 멋스럽다. 용서의 언덕에서는 무엇을 용서할지 생각하게 한다. 대개 순례자들은 못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를 떠올린다. 나와 화해한다.

순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는다. 순례길을 통틀어 가장 멋진 풍경이 반겨준다.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순례자의 조각상이 선용서의 언덕


매혹적이고 고된 메세타 고원

15일쯤 지나면 걷기 도사 또는 걷는 기계가 된 기분이다. 그쯤에 만나는 300∼700m 고도의 메세타 고원은 매혹적이면서 고통스럽다. 푸른 고원에는 밀밭과 포도밭이 자리하고, 양귀비꽃이 피어 환상적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무가 없어 강렬한 햇빛을 온몸을 받아야 한다. 어쩌면 매혹은 고통을 수반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메세타를 통과하면 대도시 레온에 닿는다. 큰 도시는 순례자를 작고 볼품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때는 번듯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로해도 좋으리라.

사리아를 지나면 갑자기 순례자들이 많아진다. 일주일 일정으로 온 순례자들이 합류하기 때문이다. 오래 걸어온 꾀죄죄한 순례자와 막 길에 들어온 말끔한 순례자가 뒤섞여 걷는다. 하루 이틀 지나면 똑같은 순례자가 된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산티아고 성당을 눈에 넣으면서 감격한다. 성당 앞 광장에서 여유롭게 앉아 이야기하고 와인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 순례자들과 하나가 되면서 내 영혼을 따뜻하게 했던 순례를 마무리한다.

단체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스페인 학생들
순례의 종착지 산티아고를 알리는 비석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

가이드북이나 ‘Camino Pilgrim’ 앱을 준비해 사전에 공부하자. 순례길 경로상의 마을 리스트 및 거리, 알베르게와 식당, 대중교통 등을 알 수 있다. 준비물은 등산화, 스틱, 우비 등이 필수다. 짐을 다음 목적지로 옮겨주는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다양한 순례 일정의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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