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야선착장에서 금오도 함구미 가는 배를 탔다. 여객선 대합실은 온돌형의 큰 방이다. 다들 누워 허리를 지지며 편안하게 섬으로 들어간다. 깜박 잠들었는데 벌써 도착을 알린다. 불과 40분 만에 금오도 함구미선착장에 닿았다. 금오도는 여수에서 돌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넓이 27㎡, 해안선 길이 64.5㎞에 이른다. 금오도는 앞과 뒤가 딴판이다. 육지를 바라보는 북쪽 해안은 밋밋한데, 반대편인 남쪽은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으로 천 길 벼랑이 펼쳐진다. 여기에 비렁길이 나 있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말한다.
등산화 끈을 꽉 조이고, 비렁길 1코스에 오른다. 두포까지 5㎞, 2시간쯤 걸리는 길이다. 호젓한 숲길이 나오면서 휘파람이 절로 난다. 동백, 참식나무, 비자나무 등 난대림이 가득한 숲길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가 일렁거린다. 쪽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만나자 가슴이 뻥 뚫린 듯 상쾌하다. 발걸음은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모퉁이를 돌자 너른 암반이 펼쳐진다. 여기가 미역널방이다. 주민들이 지게에 미역을 지고 와 널던 바위라서 미역널방이란 이름이 붙었다.
미역널방은 건너편에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나무데크를 따라 반대편으로 가면, 약 90m 높이의 아찔한 미역널방 절벽이 펼쳐진다. 데크길은 수달피령전망대까지 편안하게 이어진다. 전망대를 지나 대나무 숲길을 휘휘 돌아가면 송광사 절터에 이른다. 기품 있는 바위 아래 너른 터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금오도 특산품인 방풍나물이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나고 있다.
절터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북쪽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함구미마을에 닿는다. 가볍게 비렁길을 체험하고 싶다면, 여기서 내려가면 된다. 다시 길을 나서면 소나무 아래 초분을 만난다. 우리나라는 주로 남해안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초분은 시신을 풀로 덮어 무덤을 만든 후 1~3년 동안 두었다가 뼈만 다시 매장하는 독특한 풍습이다.
초분을 지나면 그윽한 비자나무 숲이 나오는데, 비자나무에는 콩알만 한 콩난이 가득하다. 울퉁불퉁한 수피를 가진 소사나무 군락지가 끝나면 너른 암반과 함께 다시 푸른 바다가 나타난다. 여기가 신선대다. 큰 암반인 신선대는 바다로 돌출해 조망이 좋다. 걸어온 곳과 가야 할 길이 한눈에 잡힌다. 신선대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비렁길 1코스 종점인 두포에 닿는다.
두포부터 시작하는 2코스는 팍팍한 시멘트 포장도로다. 걷는 맛은 떨어지지만, 주변이 온통 동백 군락지다. 동백은 꽃도 아름답지만, 반질반질하고 윤기나는 두꺼운 잎이 일품이다. 동백이 사라지면 굴등전망대에 닿는다. 쪽빛 바다 너머 2코스 종점인 직포가 살짝 보인다. 촛대바위 아래를 지나 시나브로 내리막길을 따르면 직포에 닿는다. 직포에는 곰솔 큰 나무들이 많다.
직포항에서 여객선이 기적을 울린다. 출발 시간이 가까웠다는 신호다. 서둘러 배에 오른다. 뱃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맙소사! 저런 험준한 벼랑길을 따라 걸어왔구나. 힘들지만 꾸준하게 걸었고, 앞으로도 담담하게 내 길을 걸어야겠다.
겨울철 비렁길 걷기는 배편과 잘 연결해야 한다. 비렁길 총 5개 코스를 모두 주파하려면 1박 2일, 당일은 1~2코스가 적당하다. 1~2코스 거리는 약 8.5㎞ 3시간 30분쯤 걸린다. 배편은 백야선착장 또는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함구미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2코스 종점인 직포에서 백야선착장으로 나간다. 배편은 ‘가보고 싶은 섬’(http://island.haewoon.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