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하얗게 뒤덮인 겨울 산
소담스레 피어난 눈꽃
겨울에도 꽃은 피어난다. 그것은 바로 눈꽃! 오직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순백의 눈꽃 속으로 빠져들 준비가 된 당신을 위해 겨울 명산을 소개한다.
writing. 임산하 photograph. 한국관광공사 제공
- 덕유산
-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1로 159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너른 설산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산이라 하면 정확할까. 덕유산(德裕山)은 이름처럼 덕이 많고 넉넉하다. 소백산맥의 줄기에 위치해 전라북도 무주에서 경상남도 함양까지 걸쳐 있을 만큼 널찍한 덕유산은 곳곳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단연 최고로 빛나는 때는 바로 겨울이다. 최고봉인 향적봉은 해발 1,614m로 높이가 어마어마한데, 이곳 주변은 고산지대에서 만날 수 있는 상고대로 반짝인다. 추운 겨울날 공기 중의 수분이 나무에 얼어붙어 마치 꽃처럼 서리가 피어난 상고대. 우듬지까지 투명하게 반짝이는 ‘서리꽃’은 떨어진 잎의 자리를 대신한다. 추운 겨울마다 겪어야 하는 나무의 이별에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촘촘히 가지의 곁을 채운다.
덕유산의 상고대를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주덕유산리조트의 곤돌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곤돌라를 타면 설천봉(1,520m)까지 갈 수 있고, 여기에서 향적봉까지는 금방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그야말로 ‘설산’이라 불리는 덕유산을 여유롭게 만끽하며 오르는 혜택을 누려 보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그야말로 덕이 넘치는 산이 아닌가.
- 무등산
-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동산길 7번길 5
눈에 물든 자연 속에 풀어지는 경계
자연에게도 위용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무등산을 닮았을 듯싶다. 무등산은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 주상절리를 품고 있는데, 최고봉인 천왕봉(1,187m)에서 남서쪽의 서석대(1,050m)와 입석대(950m)까지 이어진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을 만큼 남다른 위세를 뽐낸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응회암이 긴 시간에 걸쳐 식는 동안 부피가 줄어들고 수축할 때 인장력이 작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감히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또 견고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자라난 무등산 주상절리. 그래서인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우렁찬 소리가 들린 듯 당당한 기세가 엿보이는데, 신기하게도 겨울에는 그 모습이 조금 달라진다. 차분히 눈이 내려앉았기 때문일까. 주상절리 사이사이 초목에 눈꽃을 피우고, 기둥의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장면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경건해진다. 때로 매서운 시간을 견뎠을 주상절리의 과거를 상상하게 되는 이 순간, 마음을 주고받은 듯 자연과 우리의 경계는 하얗게 사라진다.
- 태백산
- 위치 강원도 태백시 번영로 59
하염없이 머물게 하는 영산의 환대
매년 소복이 내리는 눈에 하얗게 뒤덮이는 태백산. 눈꽃 산행의 정수라 불리는 이곳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지만, 유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태백산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태백산은 해발 1,567m로 높은 산에 속하지만 산세가 부드럽다. 그래서 새하얗게 피어난 눈꽃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싶은 이들을 너그럽게 환영한다. 태백산의 환대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백산은 구석구석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데, 특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에 빼곡히 내린 눈과 우듬지까지 청아하게 물들인 서리는 우리를 그 자리에 하염없이 머물게 한다.
예부터 천제단에서는 제천의식을 지내 왔으며,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태백산. 일출 명소로도 꼽히는 태백산에 새벽 산행을 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맘때, 순백의 설산과 투명한 하늘 그 사이에 붉게 스미는 일광은 태백산이 당신에게 주는 순수한 정기일 것이다.
- 소백산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소백로 1794
겨울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아름다움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소백산(小白山)이라 불린다는 이곳. 게다가 이름에 들어간 ‘소(小)’와 달리 결코 작지 않은 소백산은 경상북도 영주와 충청북도 단양까지 걸쳐 있을 만큼 널찍한 능선을 자랑하는데, 이 무렵에는 온몸으로 세상의 눈을 모두 받아낸 듯 하얀 눈 세상으로 변신한다. 하얗게 뒤덮인 소백산은 능선이 부드러워 겨울인데도 왠지 포근한 매력을 주고, 마치 산이 아니라 소박한 나라에 놀러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겨울 소백산의 매력은 등산길에 있다. 저 멀리 순백으로 펼쳐진 산등성이의 모습은 매 순간이 절경이다. 이는 흰색의 힘이다. 자신이 내려앉은 곳곳의 모양을 해치지 않으며 구석구석을 촘촘하게 밝힌다. 그리고 그 빛은 상고대를 통해 절정을 이룬다. 능선이 한반도에 가로로 뻗어 있어 겨우내 거센 삭풍을 맞는 소백산은 그 사나움에도 우아하게 ‘서리꽃’을 피워 낸다. 소백산의 아름다움은 겨울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