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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To

수수하지만 우아하게
빛나는 억새

가을이 무르익으니 억새가 손짓한다. 올가을엔 장관을 이루는 억새 군락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억새만의 품격에 우리의 마음도 신비롭게 물결칠지 모른다.

writing. 임산하 photograph. 한국관광공사 제공

제주
산굼부리
위치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화창하게 피어나
오래도록 마음을 적시다

자연의 색을 가감 없이 펼쳐 내는 제주. 가을이 되면 높은 하늘 아래 청명한 바람을 따라 물결치는 억새 군락을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곳은 산굼부리다. 오랜 기간 유명 관광지로 이름을 떨쳐 왔기에 누구나 아는 곳이지만, 이는 그만 한 특별함이 숨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제주도 말인 ‘굼부리’는 화산체 분화구를 뜻한다. 특히 산굼부리는 완만한 형태의 마르(maar)형 화구로 우리나라에는 유일하며, 분화구는 생태의 보고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가을의 산굼부리는 ‘억새의 보고’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산굼부리로 오르는 길을 따라 하늘거리는 억새는 제주의 청량한 빛을 받아 더욱 따사롭게 빛난다. 억새 군락 주변으로는 어떤 인공물도 없기에 그저 자연 속을 누빌 수 있다.
한가롭게 거닐다 보면 문득 하늘에 석양이 깔리는데 이때가 장관이다. 서쪽으로 위엄 있게 서 있는 한라산 뒤로 해가 고개를 숙일 무렵, 한낮의 빛깔이 억새를 흠뻑 물들이며 서서히 사라진다. 그렇게 또 한 번 붙잡히지 않는 시간이 지나가지만 신기하게도 그 순간은 우리 마음에 스며 오래도록 남게 된다.

합천
황매산
위치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공원길 137-7
자연과 동화되어
은빛 억새 숲을 거닐다

황매산은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시간이 주는 진실한 힘을 채워 오며 이제는 ‘영남의 금강산’으로 불리게 된 황매산. 그 단단함이 있기 때문인지 황매산은 계절마다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특히 가을철에는 흐드러진 억새가 너울 치며 비경을 만들어 낸다. 해발 900m 능선을 따라 잇따르는 억새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과 동화되어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소박하면서도 눈부신 자연의 품속에서 잠시 산신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황매산의 매력은 억새 군락처럼 끝이 없는데, 해발 850m 높이의 캠핑장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은빛 억새를 하늘 삼아 쉴 수 있는 이곳 황매산오토캠핑장은 그야말로 가을 속에서 한껏 취하기에 제격이다. 가을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산 내음에 마음을 정화하다 보면 어느새 해 질 녘이 찾아오고, 그 순간 억새가 하늘의 빛을 머금으며 세상이 단색으로 물드는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당신에게 무언가 찾아들지 모른다. 아마도 자연이 주는 순수한 위로가.

포천
명성산
위치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191-1
강인하게 견뎌 온 억새의
고매한 강단

마치 눈이 온 것만 같은 이곳. 억새로 명성(名聲)이 자자한 명성산(鳴聲山)은 그야말로 사락대는 억새 군락의 울음소리(鳴聲)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매년 억새 축제를 개최할 만큼 억새의 아름다움을 빼곡히 간직한 명성산. 억새가 군락을 이루게 된 데에는 억새만이 간직하고 있는 생명력이 바탕이 되었다. 명성산은 오래 전 화전민이 일구던 밭이었는데, 거센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는 힘이 오늘날의 억새 군락을 만든 것이다. 억새밭은 험한 등산길 끝에 선물처럼 등장한다.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초원이 모두 억새로 너울대는 모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하루하루를 살아 내며 어제보다 더 성장하고 더 강인하게 자란 억새는 작은 바람에도 산들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고개를 숙이되 꺾이지 않는 고매함으로 억새는 그렇게 물결친다. 이곳의 억새에게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딘 자만이 갖는 강단이 엿보인다.

서울
하늘공원
위치 서울시 마포구 하늘공원로 95
도시에서 누리는 억새의 매력

20년 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서 시민 모두가 찾는 공원으로 환골탈태한 하늘공원. 가을이 오면 하늘공원은 억새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해발 98m 높이에 위치한 하늘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맹꽁이 전기차를 탑승하거나 걸어 올라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맹꽁이 전기차를 타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는 것도 좋지만 291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오르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처음에는 계단 수에 압도되다가도 점차 시야가 넓어지며 서울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한강을 잇는 성산대교와 저 멀리 보이는 여의도 그리고 빌딩숲 사이 촘촘한 가로수와 병풍처럼 서 있는 산까지, 옹기종기 모여 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늘공원에 도착하면 오밀하나의 개성을 이룬 서울을 마조밀 모여 있는 억새들이 우리를 반긴다. 약 5만 8,000평에 달하는 공원을 가득 채운 억새는 우리 마음을 간질이며 미소를 꺼내게 한다.
하늘공원의 억새를 한눈에 담고 싶다면 ‘희망 전망대’에 들어가면 된다. 다른 이름은 ‘하늘을 담는 그릇’으로 설치 미술가 임옥상 작가의 작품이다. 이곳에서는 하늘공원 억새밭을 관망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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