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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시대의
경제 전망과 대응 방안
코로나19 사태가 점차 안정화되고 엔데믹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되면서, 한국경제 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체제 변화와 더불어 한국경제의 내일을 내다보고자 한다.
writing. 김정식(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지역 블록화 속 큰 정부의 수요 증가
글로벌 경제체제의 변화를 보면 지역의 블록화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세계화가 우세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국가 간, 지역 간의 장벽과 규제가 없어지는 추세였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감염병 확산을 규제하는 명목으로 국가와 지역 간 이동의 장벽을 높였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지역 중심의 공급망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유럽 침략 위협도 지역안보와 지역경제통합을 가속화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큰 정부’ 추세도 변화 중의 하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된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자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큰 정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실업 인구가 증가하면서 공공일자리 창출과 실업 급여가 중요하게 되었고 저금리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부규제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꼽힌다.
또 다른 변화는 디지털화의 가속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디지털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고 있다. 감염을 피하기 위해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실물거래는 물론 금융거래와 결제에서도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디지털화는 근무형태를 비롯해 모든 경제 관행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통화 확산으로 국가 간 자본 이동은 물론 국내 금융거래 관행도 크게 변하고 있으며, 고용과 물가 또한 온라인거래와 재택근무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경기침체 국면의 심화 가능성
엔데믹 시대, 거시경제 여건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경기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배경에는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되살아나면서 기업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 있다. 반면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배경으로는 금리인상에 주목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그동안 각국은 저금리에 양적완화로 시중 유동성을 크게 늘려 왔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고 부동산 버블을 만들었다. 엔데믹 시대에 통화당국은 자산 가격과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경기침체를 전망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원유와 원자재, 곡물 가격이 높아지면 생산원가 상승으로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어 경기침체가 심화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또한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 훼손으로 생산비용을 높여 경기침체를 유발시키는 원인이다. 그 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운송비용 증가와 임금인상 역시 경기침체를 불러온다. 이렇게 보면 엔데믹 시대 경기는 침체 국면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경기침체는 물론 디지털화와 비대면 거래 증가로 고용감소도 예상된다. 디지털화와 같은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줄인다. 주택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대로 임금이 높아지는 것 또한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배경이다.
인플레이션은 크게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 크게 늘어난 시중 유동성은 수요를 늘려서 물가를 높인다. 수요가 늘어나면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높아지게 되고 필수재인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주거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임금 또한 높아진다. 임금인상은 원가를 높여 물가를 상승시키고 결국 경제는 임금-인플레이션 악순환(Wage-Inflation Spiral)에 빠져들게 된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 가격 상승 원인 파악 필요
부동산 가격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비롯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큰 폭의 금리인상이 있을 경우 하락이 예상된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시중 유동성 증가로 부동산과 주가 등 자산가격은 크게 올랐다. 통화당국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할 경우 자산가격 버블은 붕괴될 수 있다.
수도권의 열악한 교통인프라로 서울 주택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는 서울 주택수요를 줄일 수 없으며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그 외에도 임금인상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분양가가 인상되는 것 또한 주택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다. 새 정부가 수도권 교통인프라 미흡 등 주택 가격 상승의 올바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경기침체를 우려해 금리인상 폭을 작게 올린다면 주택 가격 안정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부의 불평등과 외환위기의 우려
부의 불평등 심화도 우려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소득 불평등이 문제였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높이고 최고소득구간 소득세율을 높여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려 했다. 그러나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실패로 저금리에 과잉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최근 5년 사이 주택 가격은 2~3배 높아졌다. 소득의 불평등과 달리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은 금액 규모에 대한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사회주의 경향이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
외환위기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엔데믹 시대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국은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된다. 큰 폭의 미국 금리인상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최근까지 미국 연준이 3%p 이상 금리를 높였던 1997년과 2008년 모두 한국은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엔데믹 시대에도 미국 금리가 3%p 이상 높아질 것이 예상되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재정적자가 GDP의 6%를 넘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었으며 최근에는 원유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늘어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로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300원을 넘어설 것이 우려된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유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엔데믹 충격 극복을 위한 대책
한국경제가 엔데믹의 충격을 극복하려면 어떠한 대책을 세워야 할까. 먼저 금리를 큰 폭으로 높여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식시켜야 한다. 한국은행은 경기침체의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아질 경우 임금인상 또한 안정될 수 있으며 경제는 임금-인플레이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또한 고금리로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으며, 외환시장에서의 환율 안정화로 물가도 안정시킬 수 있다. 수출을 늘려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재정적자가 급속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신인도가 유지되었던 배경은 한미 통화스왑과 무역수지 흑자 유지에 있다. 정책당국은 수출을 독려해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시켜 대외신인도를 높여 자본유출을 막고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또한 작년 말 종료된 한미통화스왑을 재개해 외환시장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중국의 추격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경기를 부양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국의 추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자리 부족과 기업 투자 부진은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정부규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추격으로 인한 산업경쟁력 약화 때문이다. 조선, 자동차, 철강 등의 주력 산업에서 중국으로 이전이 가속화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다.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학전문인력 양성과 신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5년 임기 내 성과를 강조해 장기간 소요되고 이익집단의 반발이 강한 신산업정책을 등한시해 왔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과학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산업구조에 맞게 구축된 대학교육과 정부연구소 체제를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한 노력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 주택수요를 수도권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에 터널과 교량으로 좁혀 놓은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출퇴근 시간에 직행열차를 운행하는 등 선진국 사례를 통한 개선점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다주택자의 징벌적 과세를 보완하고, 1주택자에 대한 무제한의 감면 혜택을 차등시켜야 한다. 과세기준을 현재의 주택 수에서 보유주택 합산 금액으로 바꿔 조세의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1주택자의 보유와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에서 금액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한 80% 감면 혜택도 주택 가격과 양도차익의 규모에 따라 차등하여 고가주택에 대한 수요를 줄여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엔데믹 시대에 한국경제는 다양한 충격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MIT대학의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잘못된 제도를 선택할 때 그 나라는 성장할 수 없고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엔데믹 시대에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외환위기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새 정부 정책당국의 올바른 제도와 정책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엔데믹 시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감염병 확산 규제를 위해 국가와 지역 간 이동의 장벽은 높아졌다. 동시에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공급망 체계의 개편과 지역 안보 구축의 가속화로 엔데믹 시대에는 지역 블록화가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자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큰 정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엔데믹 시대, 한국경제는 어떻게 흘러갈까. 엔데믹 시대로 들어서면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있지만, 큰 폭의 금리인상에 주목하는 이들은 경기침체를 예상한다. 그동안 각국은 저금리에 양적완화로 시중 유동성을 크게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부동산 버블을 만들었다. 한국경제가 엔데믹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식시켜야 한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아질 경우 임금인상 또한 안정될 수 있으며 경제는 임금-인플레이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신산업정책을 통해 중국의 추격에 대응해야 하며, 서울 주택수요를 수도권으로 분산시키는 정책 등으로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