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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갈등으로 인한 경제 역풍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유라시아를 관리할 수 있는 핵심 공략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을 때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로 인한 경제 역풍이 예상되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writing. 홍완석(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원장)
미·러, 우크라이나를 놓고 왜 싸우나
2021년 1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의 갈등이 대립을 넘어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형성된 군사안보적 불연속선은 냉전 종식 이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앞세워 동쪽을 향해 힘의 진공벨트를 흡수하려는 미국과 자국의 전통적 세력권을 보전하고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러시아 사이 격렬한 투쟁의 산물이다. 이 투쟁의 동인은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미·러 양국 모두에게 결코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경혈’에 해당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유라시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켜야 할 핵심 공략 대상인 것이다. EU 및 NATO의 동진 확대로 새로이 구축되는 유럽의 정치지형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속하는가가 유럽을 넘어 유라시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동’(러시아)과 ‘서’(EU 및 NATO)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지정학적 중요성, 유럽 최대의 영토규모, 4,400만 인구, 방대한 지하자원과 최강의 농업생산력, 강한 근육질의 산업생산력 등 잠재적·현실적 국력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의 대외적 선택이 유라시아의 세력 판도에 커다란 변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우크라이나가 유라시아 패권 장악을 위한 미·러 간 세력 투쟁에서 최대 승부처인 이유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에게 우크라이나의 포섭은 러시아의 제국적 부활을 억제하면서 NATO의 세력권 확대를 보장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막대한 에너지 자원의 보고(寶庫) 카스피해 연안지역에 대한 접근도 용이하게 해 준다. 역(逆)으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의 친서구화 방지와 중립화, 나아가 슬라브 공동체로의 유인은 NATO의 동진팽창을 차단하는 ‘방역선’이다. 동시에 중·동부 유럽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장의 ‘징검다리’이자 흑해와 CIS 지역에 대한 헤게모니 장악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정리하면 크렘린에게 우크라이나는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 재건에 중요한 초석(礎石)인 것이다.
미·러 대립의 ‘언더커런트’(暗流)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의 격렬한 대립 이면에는 에너지 패권 투쟁이라는 정치적 현실주의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 집권 이후 미국의 대러 봉쇄정책의 강화는 사실 에너지 패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바마 정부 이래 방대한 에너지 채굴이 가능해지고 더욱이 셰일혁명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에너지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물량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면서 이제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가진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미·러 사이에 세계 천연가스 소비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주 무대는 에너지 먹는 ‘하마’들이 몰려 있는 유럽과 동북아다.
현재 미국은 대러 신제재법(CAATSA)을 내세워 이미 완공해 개통을 앞둔 노드스트림Ⅱ(Nord StreamⅡ) 가스관(러시아-발트해-독일)의 가동을 저지하려 하는데, 여기에 러시아는 물론이고 독일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이 신규 PNG 노선이 가동되면 EU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유럽 안보에 위협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NATO 동맹국들에게 노드스트림Ⅱ 사업 철회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은 노드스트림Ⅱ에 고강도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적 충돌 확대는 서구의 대러 제재를 양적, 질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워싱턴이 새로운 국부 창출과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해 에너지수출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상황은 러시아의 유럽 가스시장 점유율을 낮추고 미국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유익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미국의 대러 압박 이면에는 자국산 천연가스의 유럽 공급 확대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유럽은 천연가스의 약 70%를 수입하는데, 이 가운데 약 40%가 러시아산이다. 노드스트림Ⅱ가 작동되면 유럽이 저렴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늘릴 것이고 미국산은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이 러시아를 자극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을 때 서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함께 러시아에 소위 ‘지옥의 제재’를 가할 것이다. 정치외교적, 군사안보적, 경제통상적 작용과 반작용의 보복을 주고받음으로써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문자 그대로 다시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노드스트림Ⅱ는 폐쇄 압력을 받아 국제유가는 춤추고 금융시장은 휘청이며 국제곡물 가격 변동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에너지, 곡물, 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모두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었는데,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미·러의 충돌이 만들어 낸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세하면서 자원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글로벌 자원대국
주지하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광활한 영토에 멘델레프 원소주기율표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자원이 매장된 세계적 자원부국이다. 동시에 넓은 영토에서 다양한 곡물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농업대국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경우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의 하나로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내 공급 증가를 견인하는 산유국이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수출량이 세계 1위, 원유 생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다. 그리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천연가스가 17%, 석유는 13%에 이른다. 특히 러시아 원유 수출의 53.8%, 천연가스 수출의 46%가 유럽으로 향한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의 핵심 수출 시장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세계적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의 땅은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옥토의 대명사 ‘체르노젬’(흑토대)으로 뒤덮여 있고, 국토의 80% 이상에서 경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바구니’, ‘유럽의 식량 창고’로 불린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루마니아와 함께 세계 4대 곡물 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미·러 충돌이 글로벌 원자재 가격 폭등을 유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치솟는 국제 원자재 가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는데도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 1월 월간 상승률을 보면 미 천연가스(30.7%), 브렌트유(17.3%) 선물 가격이 한 달 사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이 배럴당 93.10달러까지 올랐다. 이는 2014년 9월 30일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다. 러시아가 무력 침공을 실행하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JP 모건은 올해 1분기 국제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후 위기로 생산량이 불안정한 곡물시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 1위 국가다. 우크라이나도 밀 수출 세계 5위, 옥수수 수출은 3~4위를 다툰다. 전쟁이 현실화되거나, 서방의 대러 제재조치가 이뤄진다면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고 가격 폭등은 필연적이다. 이미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1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135.7로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중 갈등, 탄소 중립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며 주요 금속 원자재 가격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금속시장에서 러시아의 글로벌 점유율은 매우 높다. 니켈의 점유율은 약 49%, 팔라듐 42%, 알루미늄 26%, 백금 13%, 철강 7%, 구리 4%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러시아가 세계 2위 생산국 위치를 차지하는 알루미늄 가격의 폭등이 현저하다. 지난 2월 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이날 알루미늄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7% 오른 t당 3,186달러를 찍었으며 2008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위기가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힘의 오버스트레칭을 야기하는 미·러의 대립을 멀리서 흐뭇하게 즐길 것이고, 국제유가는 천장을 뚫고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할 것이다.
한국, 글로벌 경제 후폭풍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가 야기한 글로벌 경제 역풍에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다. 자원 부국 러시아는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의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원료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선철, 백금, 유무연탄, 원유 등 수출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대러 무역액은 약 273억 달러로 러시아는 우리나라 10위권 교역국 안에 포함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러 관계뿐 아니라 글로벌 및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범정부적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명료하게 예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러의 소모적인 극한 대치로 이득을 취하는 최대 수혜자는 중국과 국제 에너지 메이저라는 점이다. 중국은 힘의 오버스트레칭을 야기하는 미· 러의 대립을 멀리서 흐뭇하게 즐길 것이고, 국제유가는 천장을 뚫고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할 것이다. 국제 투기세력들이 미·러가 인위적으로 연출한 위기 조장에 편승해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며 활개 치는 모습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