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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정경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

    핀란드 헬싱키
    VS
    한국 제천

    • 글. 임산하
  • 다소곳이 우리를 맞이하는 핀란드의 헬싱키와 한국의 제천. 내세우지 않지만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한 두 곳은 단연 외유내강의 여행지라 할 만하다. 특히 겨울철에 그 매력은 마력이 된다.
긴긴밤의 매력이 가득한 헬싱키

핀란드 헬싱키는 밤새 내린 눈과 닮았다. 유난스러움 없이 차분하고 소박하다. 그래서인지 헬싱키는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헬싱키에는 내세우지 않는 이에게 자연히 드러나는 단단함이 있다. 조용히 새하얀 기쁨을 선물하는 내면의 웅장함이 바로 헬싱키의 매력이다.
헬싱키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 곳곳을 가볍게 거닐 수 있다. 걷는 게 힘이 들 때에는 녹색 트램을 이용한 이동도 가능하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다니는 트램 안에서는 헬싱키의 단정한 건물들을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있다. 게다가 겨울의 헬싱키는 건물과 도로마다 주광색 조명이 수놓여 있어 밤의 거리는 더욱 따뜻하게 빛난다. 북유럽의 특성상 낮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쯤으로 매우 짧으나, 낮보다 밝고 아름다운 밤이 있기에 결코 낮이 그립거나 아쉽지 않다.
길고 긴 밤은 연말 헬싱키 대성당(Helsingin Tuomiokirkko) 앞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통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연말에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 글로기(Gl gi) 등을 판매하는 식당 등이 오두막 형태의 팝업 스토어로 열리는 이곳에서는 한껏 크리스마스에 빠져들 수 있다. 게다가 중앙에서 아름답게 돌아가고 있는 화려한 회전목마는 마치 트리 위의 별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점정이 된다.

  • 헬싱키 거리의 녹색 트램
  • 크리스마스 마켓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자리

크리스마스 마켓의 배경이 되어 주는 헬싱키 대성당은 헬싱키 여행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관광지다. 여행객들의 인증샷 장소이자 헬싱키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이곳은 1852년 완공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대성당이었으나 핀란드 독립 이후 루터교회의 대성당이 되었다. 핀란드는 인구의 약 85%가 루터교로, 헬싱키 대성당은 핀란드 국민에게 특별한 곳이다.
헬싱키 대성당은 돔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인데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 있지 않은 둥그런 모습은 온화하면서도 강인해 보인다. 왠지 우리를 따뜻이 감싸 줄 것만 같다. 실제로 헬싱키 대성당은 1년 365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헬싱키 대성당에서 핀란드 만이 있는 바다 쪽으로 걸어 나오면 또 다른 대성당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우스펜스키 대성당(Uspenski Katedraali)이다.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1868년 지어진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이다.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지어진 이 건물은 비록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고통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과거 앞에 물러서지 않으려는 핀란드 국민들의 굳센 의지 또한 엿보인다.

거리마다 내려앉은 노을빛

빽빽한 마천루가 없어 어디서든 광활한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헬싱키. 헬싱키는 핀란드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시원하게 트인 바다도 만날 수 있는데, 스카이휠(SkyWheel) 대관람차에서는 하늘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대관람차가 40m 높이에 이르면 헬싱키가 간직하고 있는 자연과 문화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눈에 담긴다.
스카이휠에서 헬싱키 전경을 감상할 수 있듯 헬싱키 거리에서도 스카이휠을 만날 수 있다. 소박한 건물들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민 스카이휠이 보이면 마음이 동심으로 물드는 기분이 든다. 이는 헬싱키가 우리 마음에 뿌리는 조용한 마법이다.
스카이휠에서 내려오면 바다를 마주한 수영장인 알라스 씨 풀(Allas Sea Pool)을 만나게 된다. 알라스 씨 풀에는 온수풀이 마련 돼 있어 겨울철에도 따뜻한 수영을 즐길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바다 위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면 더 아름다운 환상에 젖게 된다. 거리마다 한 움큼씩 내려앉은 눈과 잔잔한 바다 물결 위에 노을빛이 퍼지고 눈앞에 한가득 석양이 깔리는 이때, 당신은 헬싱키가 선사하는 풍경에 풍덩 빠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헬싱키의 겨울은 잔잔히 우리 마음에 들어찬다.

스카이휠 대관람차


소박한 건물들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민
스카이휠이 보이면
마음이 동심으로
물드는 기분이 든다.
이는 헬싱키가
우리 마음에 뿌리는
조용한 마법이다.

TIP 여행 하면 음식이 빠질 수 없다. 헬싱키에서 꼭 맛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는 시나몬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 안은 향긋한 계피 향으로 가득찰 것이다.

눈 내린 의림지


눈은 의림지 위에 소복이
쌓이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간다.
그래서인지 조금 쓸쓸하지만
그 때문에 수수하게 빛난다.

자연의 수수함으로 빛나는 제천

제천은 조용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유수의 문화재가 가득하지만 전혀 내세움이 없다.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제천과 가장 닮은 여행지가 있다면 그곳은 단연 의림지일 것이다. 의림지는 그 역사가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저수지로, 남쪽 용두산의 물줄기를 가두어 만든 수리 시설이다. 가뭄과 홍수 피해를 막아 주며 제 역할을 다해 온 의림지는 제천의 자랑이자 충청도의 핵심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때 호수가 바로 의림지다. 의림지는 역사와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움도 남다르다. 의림지 제방을 따라 수백 년 묵은 노송과 전나무, 버드나무 등이 어우러져 자란 제림(堤林)은 그 자체로 절경을 이룬다. 멀찍이서 보면 한 폭의 산수화가 되고, 안을 거닐면 제 아무리 진경산수화여도 이를 완벽히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의림지는 사계절 내내 제 몫의 빛을 발하지만, 겨울철 눈 내린 의림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명승 제20호인 이유가 납득이 된다.
눈은 의림지 위에 소복이 쌓이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간다. 그래서인지 조금 쓸쓸하지만 그 때문에 수수하게 빛난다. 단 한 사람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의 소박한 정경. 의림지는 우리에게 자연의 전부를 선물한다.

  • 배론성지(이미지 출처_휴윗제천 홈페이지)
  • 청풍호 일몰
아름다움 이면에 서린 역사의 아픔

제천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도 생을 함께한 의림지에는 아픔이 남아 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의림지 확장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준설토가 한 곳에 쌓여 만들어진 ‘의림지 섬’이 바로 슬픔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곳이다. 마치 제림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청명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의림지 주변 어디에서나 눈길을 끌지만, 사실은 쓰라린 아픔이 남은 곳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된 배론성지도 실은 고통 위에 형성된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계절에 따라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곳으로 유명해진 배론성지. 이제는 너나없이 문을 두드리는 이곳은 신앙심을 버리지 않았던 신자들의 강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땀의 순교자’라 불리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와 한국 최초 서양식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 등이 있는 역사의 산실이다. 배론성지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한 것은 종교 이상의 가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배타적 신념으로 인해 차별받았던 이들은 결코 ‘자기 자신’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석양빛에 잔잔히 젖어 든 청풍호

역사는 결코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역사가 기억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제천은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곳이다.
부드러운 산세가 겹겹이 둘러져 있는 청풍호는 제천의 대표 명소로 자연 경관을 느끼기에 탁월하다. 그런데 이곳의 공식 명칭은 사실 충주호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호수로 충주뿐 아니라 제천, 단양 등의 일대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사실 충주댐 완공 당시 제천의 수몰 지역이 상당했기에 제천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청풍명월’에서 이름을 따 ‘청풍호’라 부른다. ‘청풍호’는 그 이름에 걸맞은 풍광을 자랑한다.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뜨는 곳. 일몰이 바람을 타고 오듯 하늘은 석양빛에 잔잔하게 젖어 들고, 곧이어 해가 저물면 까만 밤하늘마저 찬란한 달빛에 물든다.
게다가 청풍호에는 모노레일, 케이블카, 번지점프 등 신나는 재미도 가득하다. 올겨울, 장관을 이루는 자연 속에서 나의 열기로 추위를 녹이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려 보는 것은 어떨까.

TIP ‘미식도시’로도 유명한 제천의 명물은 단연 ‘빨간오뎅’이다.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빨간오뎅’ 한 입에 뜨거운 국물을 호로록 마시면 겨울 추위는 단숨에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