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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조세체계를 재정립하다
2023년에 도입되는
글로벌 디지털세- 글. 강인수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2023년부터 글로벌 디지털세가 발효된다. 국제조세체계의 원칙을 정립하는 역사적 성과라는 의미와 장기적인 세수 확보의 효과가 있으나, 다국적 기업에 적용되는 법적 제도의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된다. 앞으로 찾아올 변화를 미리 살펴볼 때이다.
글로벌 디지털세의 도입
10월 말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디지털세 도입과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부과하기로 한 조세개혁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은 ‘기업이 소재하는 곳에서 과세한다’는 1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국제법인세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 조치는 내년에 세부적인 이행 계획을 세워 표준규칙을 마련한 후 2023년부터 발효된다. 이번에 합의된 내용이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기업이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조세제도와 기업환경이 크게 바뀌게 되므로 글로벌 디지털세가 도입된 배경과 주요 내용, 그리고 파급효과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이 크다.
도입 배경,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방지 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은 2012년부터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행위에 따른 ‘세원잠식과 소득이전(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BEPS란 다국적 기업이 국가 간의 세법 차이, 조세조약의 미비점 등을 이용하여 경제활동 기여도가 낮은 저세율국으로 소득을 이전함으로써 과세기반을 잠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국적 기업의 BEPS로 인한 법인세 손실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000억에서 2,4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업활동에서 법인세 과세의 근거가 되는 고정사업장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기업의 이윤창출 활동과 이에 대한 과세권을 지닌 관할국의 연계가 모호해졌다. 특히 구글과 같은 디지털 공룡기업에 대한 과세문제가 BEPS 관련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OECD/G20은 다국적 기업의 세원잠식을 통한 조세회피 방지대책 이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16년 포괄적 이행 체계(IF·Inclusive Framework)를 출범시켰다. 139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IF에서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국제조세체제의 원칙과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디지털세 논의와 별개로 2018년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이 추진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보복관세 부과로 대응하면서 디지털세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올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 경제 재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5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통한 세수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디지털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합의 내용, 매출 발생국 과세권 배분과 글로벌 최저한세율 도입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지난 7월 1일 OECD/G20 IF 제12차 총회에서 130개국이 합의했던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세 도입에 따른 매출 발생국 과세권 배분(필라1)과 글로벌 최저한세율 도입(필라2)으로 구성된다.필라1은 글로벌 연결 기준 연간 매출액이 200억 유로(약 27조 원)를 넘는 다국적 기업 중 이익률(글로벌 세전이익/글로벌 매출액)이 10% 이상인 대기업 매출에 대한 과세권을 시장 소재국에 배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채굴업과 금융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2023년부터 글로벌 매출 가운데 통상이익률(10%)을 웃도는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세금을 시장 소재국에 내야 한다. 필라1에는 적용 대상 기업과 배분량뿐만 아니라 과세 연계점(과세권을 배분받을 자격이 있는 시장 소재국을 판단하는 기준), 매출 귀속 기준, 이중과세 제거, 분쟁해결 절차, 일방주의적 조치, 이행 계획의 구체화 등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기존의 디지털 서비스세와 같은 국가별 단독과세 폐지를 의무화하였다.
필라2는 글로벌 연결 매출액이 7억 5000만 유로(약 1.1조 원)를 넘는 다국적 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15% 이상의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실효세율이 10%인 국가에 자회사를 두는 경우 미달 세액인 5%만큼은 본사가 있는 자국에서 추가로 과세한다는 것이다. 톤세 제도를 적용하는 해운업계의 특성을 감안해 국제 해운소득은 필라2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파급효과,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과세권 확보
이번 합의는 국제조세체계의 원칙을 새로 정립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도출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물리적 사업장이 없는 외국기업에 대해 과세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우리도 구글과 같은 거대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대한 추가 과세권 확보가 가능해졌다. 현재 기준으로국내기업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곳, 전 세계적으로는 100여 개 기업이 대상이 된다.
OECD는 디지털세 도입으로 인해 각국 정부가 1,250억 달러(약 147조 원)에 해당하는 과세권을 재분배 받게 될 것으로 추산하였다.
이중과세 조정절차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 납부국은 달라지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에 납부하던 세금 중 4,000억 원 가까이를 해외에 납부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는 구글 등 그동안 국내에 세금납부 실적이 미미했던 외국기업들에 대한 과세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세수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기준으로는 디지털세 적용 대상 기업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곳 정도이나, 2030년부터 연결 매출액 규모를 100억 유로로 낮출 경우 대상 기업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주장 때문에 적용 대상이 플랫폼 기업뿐만 아니라 전 업종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한국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법적 제도 재점검 필요성
최저한세율(15%) 적용을 받는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7,000~8,000개 정도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각국 정부의 세수는 1,500억 달러(약 176조 원)로 늘어날 것이라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최고 법인세율이 25%이기 때문에 최저한세율 15%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법인세율 부담에 실질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므로 이에 따른 기업의 투자와 공급망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법인세율 이외의 제도와 규제 요소가 외국 기업의 투자 결정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관련 제도를 면밀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또한 강제적 중재제도 도입에 대비해 전문가 역량을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기업, 특히 디지털 글로벌기업들의 정보공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에게 제대로 된 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매출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기업들은 유한회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매출 실태조사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정확한 과세를 위해서는 법적 걸림돌을 해결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