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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담하게 피어난
    역사와
    지금이 만나다

    몰타공화국의 몰타
    VS
    한국의 경주

    • 글. 임산하
  • 고요하지만 단단한 문화를 간직한 몰타공화국의 몰타 섬과 한국의 경주는 서로 닮은 여행지로 꼽힌다. 유구한 역사를 넘어 아름다움이 생동하는 두 지역에 흠뻑 빠져 보자.
평온한 자연과 닮은 몰타 섬

숨 막히는 비경 속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풍성한 몰타공화국은 총 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다. 몰타 섬, 고조 섬, 코미노 섬과 무인도로 이루어진 몰타공화국은 유럽에 속해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와도 가깝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몰타공화국에서 가장 큰 섬인 몰타 섬은 수도 발레타뿐 아니라 옛 수도인 임디나도 있는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이다. 제주도 면적의 6분 1밖에 되지 않지만 많은 것들이 집약돼 있는데, 그중 단연 으뜸은 몰타 섬만이 간직한 풍광이다. 지중해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몰타공화국은 사시사철 푸른빛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그 때문에 몰타 섬 어느 곳에서나 청량한 바다를 만날 수 있어 숨이 트이고 마음이 환해진다. 해안선이 길어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는 고집스럽게 들러붙는 일상의 어지러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데 자연의 풍광이 전부는 아니다. 바다를 등지고 뒤를 돌았을 때 보이는 도시의 풍경도 그림이다. 석회암이 주재료인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건물이 자아내는 노란빛의 평온함은 시에스타가 있는 여유와 만나 여행자들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몰타 섬의 자연과 사람은 참 닮아 있다.

  • 청량한 바다를 품은 수도 발레타
  • 화려한 내부의 성 요한 대성당
빼곡한 역사의 정수 발레타

몰타 섬을 말할 때 역사를 빼 놓을 수는 없다. 몰타공화국은 ‘기사단의 나라’로도 불린다. 1530년부터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 요한 기사단이 머물렀는데, 특히 3만 명의 오스만 제국 군대를 상대로 300명의 성 요한 기사단과 몰타인이 승리를 거둔 것은 그들의 역사에 중요한 페이지로 기록돼 있다. 1565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요새로 만든 발레타에는 중세 시대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성 요한 대성당(St John’s Co-Cathedral), 몰타 기사단장 궁전(Palace of the Grand Masters) 등은 발레타의 주요 유적으로 꼽힌다. 외부의 단조롭고 엄격한 분위기와는 달리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내부를 자랑하는 성 요한 대성당은 고유의 색을 가진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과 성 요한의 일생이 그려져 있는 천장으로 다채로움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카라바조가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작품 <세례 요한의 참수>(1608)가 소장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몰타 기사단장 궁전은 16세기 후반부터 몰타공화국을 지배한 이들의 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재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는 동시에 박물관으로도 개방해 두고 있다. <월드워Z>, <왕좌의 게임>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발레타. 발레타가 간직한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가 현재가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몰타 섬.
시간이 만들어 낸
풍성함과 일상을
감싸는 풍요로움은
몰타 섬만의
자랑이다.

현지의 생생한 맛을 만끽하다

몰타공화국에서는 언제나 풍부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몰타 섬의 남동해안 쪽에 위치한 마샤슬록은 작은 어촌이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몰타공화국의 가장 큰 시장인 선데이 피쉬 마켓(Sunday Fish Market)이 열린다. 해산물뿐 아니라 과일과 잡화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 해산물의 신선함도 특별하지만 북적이는 장터의 생생함도 남다른 곳이다.
활기 넘치는 장터 옆으로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1년 내내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몰타 섬의 노천 레스토랑에서 생선 요리를 맛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건강하게 조리된 음식은 단출한 접시에 올려 나오는데, 그 모습 그대로 투명한 맛이 입에 가득 찬다. 그런데 이곳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꼭 와인과 즐기라는 말이 있다. 몰타공화국의 와인은 주로 내수용이라 밖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현지의 맛을 만끽하고 눈으로는 바닷가 마을의 흥취에 빠지게 되는 곳. 이때 눈을 돌리면 마샤슬록 바다 위에 떠 있는 전통 배 ‘루쯔(Luzz)’ 뱃머리의 눈과 마주칠지 모른다. 매서운 바다에서 배를 지켜 준다는 루쯔 아이(eye)는 아프리카와 닮은 문화이자 몰타공화국의 상징이다.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몰타 섬. 시간이 만들어 낸 풍성함과 일상을 감싸는 풍요로움은 몰타 섬만의 자랑이다.

TIP 몰타 섬을 시티투어버스로 여행하는 것도 추천한다. 여유롭게 섬 구석구석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뻥 뚫린 2층에서는 몰타 섬의 따뜻한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곳곳에 있는 장엄한 고분들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주에는
유적을 따라 이어지는
빼어난 경관이 가득하다.

끝과 시작이 선명히 만나는 경주

신라 천년의 유적을 품은 곳. 곳곳에 있는 장엄한 고분들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주에는 유적을 따라 이어지는 빼어난 경관이 가득하다. 특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 남산은 울창한 솔숲 사이로 왕릉과 불상, 불탑 등이 고개를 내미는 곳이다. 걸음걸음마다 보이는 유적들로 과거와 만나는 신비로움에 빠지게 되는데, 남산 서편 기슭에 있는 포석정에서는 그늘이 되어 주는 느티나무의 청명함 속에 절로 풍류에 젖게 된다. 그리고 남산의 꼭대기에 오르면 경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옛 도읍지답게 드넓은 평야를 자랑하는 경주 시내와 그 주위를 감싸는 산들이 수묵화처럼 자리하는 절경을 만나게 된다.
경주의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또 다른 곳으로는 감포항이 있다. 소박한 단청 같은 풍경의 감포항은 짙은 바다와 맑은 하늘이 만나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위로 조금 걸어가면 송대말 등대도 만날 수 있다. 송대말(松臺末)은 말 그대로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뜻으로, 이곳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유명하다. 뭍과 바다의 끝이 만나는 곳, 갯바위에 부서진 파도가 끊임없이 포말을 피워 내는 곳, 일출과 일몰 모두 절경인 송대말은 끝과 끝이 만나 시작을 이룬다.

유적과 자연의 균형이 주는 조화

누구나 한 번쯤 수학여행으로 가는 경주는 그 때문에 지루하고 고루한 여행지라는 오명을 입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교육 활동’으로서 경주만큼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라의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도시로, 발걸음 닿는 데마다 유적이 가득한 박물관과 같은 곳. 유네스코가 경주의 지역마다 ‘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을 등재시켰을 정도이니 경주가 보존한 시간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 중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는 황룡사지구가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이곳은 넘실대는 청보리로 가득하다.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청보리는 신라가 간직했던 휘황한 역사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약 4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초록으로 물들인 청보리. 유적지를 둘러싼 청보리 너머로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 주변을 지키는 고목의 고즈넉한 푸르름까지, 곳곳이 장관이다.
잠잠히 자리를 지키는 유적과 자연의 고요함은 서로를 모방하듯 닮아 있다.

  • 푸르름 가득한 경주 황룡사지 청보리
  •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하나인 월성지구
든든한 진심에 배부른 재래시장

유적이 왕가의 문화를 대표한다면 시장은 서민의 문화를 대표한다. 경주역 앞에 위치한 오래된 재래시장인 성동시장은 한때는 경주의 풍요로움을 대표하던 곳이다. 많은 이들이 오가기 때문에 그들의 시장함을 달래 주기 위해 다양한 반찬을 가득 차려 놓던 성동시장의 배려는 뷔페식 백반집으로 드러난다.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날마다 음식을 조리하던 수많은 식당들은 손님이 밥 걱정, 반찬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마다 넘칠 만큼 쌓아 둔다. 단돈 7,000원에 마음 놓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여행자들에게는 즐거움과 든든함까지 채우는 일석이조의 식사다. 특히 성동시장에서 꼭 맛봐야 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곤달비 무침이다. 산나물인 곤달비는 경주의 특산물로 달콤쌉싸름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자미, 도루묵 조림. 경주 감포 바다가 키운 가자미와 도루묵으로 조리했으니 그 싱싱함은 당연하고, 달큰하고 짭조름한 맛에 입안 가득 미소가 퍼진다. 이 외에도 철마다 경주 시민들이 먹던 음식으로 그들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도처가 역사와 문화로 가득한 경주. 천년의 역사를 넘어 천혜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경주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TIP 경주를 느긋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10번 버스 이용을 추천한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핵심 유적지를 모두 만날 수 있는 ‘황금노선’이다. 반대 방향으로는 운행하는 11번 버스도 있으니 참고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