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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작가 ‘채사장’
넓고 깊게
나의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
- 글 강시내
- 사진 김범기
- 이따금 서점에 들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지대넓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라도. 제목처럼 넓은 분야의 지식을 친절하게 담아낸 이 책은 스스로 미처 다 채울 수 없는 교양을 독자들의 손에 쥐어 주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작가 ‘채사장’을 만나 책과 지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with IBK> 10월호에 관련된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하였습니다.
밀리언셀러의 탄생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처음 출판된 건 2014년 겨울이다. 일명 <지대넓얕>으로 불리는 이 책은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같은 이름으로 진행한 팟캐스트는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 2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출간 8년째인 지금까지도 <지대넓얕>의 인기는 뜨겁다. 누적 판매 부수는 200만 부가 넘고, 오디오북이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떠오른 요즘, 오디오북 업체 윌라가 발표한 2021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가장 대중적인 인문교양서’임을 입증했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저자 채사장은 <지대넓얕>을 어떻게 쓰게 된 걸까?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분야별로 쓰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을 만나 철학, 정치, 사회 등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요, 논쟁을 하다 보니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야기가 더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기본적인 뼈대를 제대로 알고 논쟁을 한다면 좀 더 발전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거죠. 사실 우리가 이미 배운 내용들이기도 한데 정리가 잘 안 돼 있는 거예요. 각 분야를 사진이라고 한다면 이 사진들이 흩어져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정신없이 퍼져 있는 것들을 정리해 앨범으로 만들어서 선물하자고요.”
‘현실’이라는 테마로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를 다룬 1권과 ‘현실 너머’라는 테마로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를 다룬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이야기는 각 분야별로 전개되지만 사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있다. 역사와 윤리가 어떤 철학의 영향을 받았는지, 종교가 사회는 물론 경제, 예술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고 보면 전혀 다른 듯한 각각의 영역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는 역사, 경제, 과학, 철학, 예술 등의 주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다소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법한 질문을 그는 끊임없이 하고 있다. 누구도 쉽게 찾지 못한 그 질문의 답을 계속해서 탐구하며 ‘이런 게 아니겠느냐’고 대신 찾아 공유해 주고 있는 셈이다.
글로 말을 거는 방법
<지대넓얕> 1, 2권을 시작으로 그는 <지대넓얕>의 연장선 격인 <시민의 교양>, 자신의 인생을 한 계단씩 크게 성장시켜 준 고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한 계단>을 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얕> 제로(0)까지 쓴 그는 오는 12월 새로운 책 출간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 중이다. 이번에도 그의 ‘나와 세계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지만 소설 형식을 빌렸다.
“그간 자아의 본질, 세계의 본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또 인문서를 잘 안 보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많은 분들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설 형식으로 쓰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질문과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초판 <지대넓얕>의 독자 피드백을 반영해 5년 만에 개정판을 낸 것도 독자들이 어떤 부분에 어려움을 느끼고 부족함을 느꼈는지를 파악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다. 친절한 인문교양서부터 자전적 에세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꾸준히 다양한 글쓰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글쓰기는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인터넷이 없어서 뭔가 재미있고, 설레게 하는 건 책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에서도 흥미를 조금 잃었어요. 특히 요즘에는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 많다 보니까 새롭다는 개념도 금세 지나간 것이 돼 버리고요. 오히려 내가 상상하고 고민하는 것, 그것을 쓰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또 글을 쓰는 게 내면을 표현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기도 해서 계속 쓸 것 같아요.”
독서의 즐거움 혹은 괴로움
생각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는 좋은 책으로 꼽히는 수많은 고전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이름을 들으면 정말 이름만 기억나는 그런 책들은 아직 하지 않은 숙제처럼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언젠가는 이 숙제를 꼭 해야만 하는 걸까? 채사장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안 읽히면 안 읽어도 돼요.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계속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일 이거든요. 그래도 내가 이 책만큼은 읽어 보고 이해하고 싶다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요.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런 거고, 핵심은 이거야’라고 설명해 주는 2차 서적들을 참고하는 거죠. 고전을 쉽고 간략하게 요약해 둔 책을 먼저 읽고 큰 줄기를 이해한 다음에 본 책을 읽으면 훨씬 잘 읽힐 거예요. 그 안내를 잘 해 주는 책 중 하나가 제가 쓴 책이고요.(웃음)”
그는 우리가 고전을 혹은 어떤 책을 고집스레 읽고 싶어 하는 건 그것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부책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든 음식을 찾아 먹는 것처럼, 정신과 마음이 찾고자 하는 의미가 담긴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채의식은 오래된 사고방식일 수 있어요. 책이 오래된 미디어이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 늘 이전에 존재하던 미디어는 높은 평가를 받고, 새로운 미디어는 낮은 평가를 받았거든요. 사실 정보 전달의 측면에서는 유튜브나 인터넷 같은 것들이 짧고 쉽게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책을 봐야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처럼 여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다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책만이 가진 특징, 책만이 줄 수 있는 정보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더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라는 것이다. 그럴 때면 서점의 베스트셀러나 TV와 신문에 소개된 책, 유수한 기관의 추천도서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 제시하거나 기준점을 세운 것 말고 내가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채사장은 ‘불편한 책을 읽어라’ 라고 말한다. 불편한 책이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책을 말한다.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아는 분야에 대해서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방법과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분야를 넘어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발을 딛는 방법 중에 선택하는 거죠. 어떤 선택을 해도 좋아요. 그런데 후자의 경우를 시도해 보면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돼요. 내가 전혀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접하는 거니까요. 쉽게 말하면 내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평소 좋아하는 발라드만 넣어서 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발라드, 국악, 클래식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이것저것 넣어서 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두 번째 방법으로 독서를 하는 게 조금 더 괜찮은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속해 있는 세계는 작을 수 있지만 그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이 크기에, 미처 다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구경하듯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 불편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자 의미라고 채사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