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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글·사진 송일봉(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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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해마다 가을이 되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로 시작되는 ‘가을’이라는 제목의 동요다. 이 동요 가사에 나오는 ‘가을바람’은 맞고, ‘붉은 치마(단풍)’는 아직 이르다. 9월이 그렇다는 얘기다. 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처럼 좋은 시절에 가벼운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좋은 ‘초가을 여행지’ 가운데 하나가 경상북도 청도다. 청도는 물이 맑고, 산이 맑고, 인심이 맑아 예로부터 ‘삼청(三靑)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조용한 가을’ 만끽할 수 있는 정갈한 사찰
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읍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운문산(해발 1,18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인 만큼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현재 운문사에서는 20대 초반의 학인 스님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인 만큼 운문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비로전(옛 대웅전)을 비롯해서 금당 앞 석등, 3층 석탑,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상 석주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아담한 전각인 작압전과 대웅보전, 오백나한전, 만세루 등과 같은 크고 작은 건축물들도 있다.
운문사의 명물 가운데 하나는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처진 소나무’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소나무는 ‘줄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다’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만 줄기가 뻗어나가는 신기한 나무다.
운문사에는 악착동자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운문사 비로전 천장을 보면 가늘고 긴 반야용선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이 반야용선에서 늘어뜨린 가느다란 밧줄에 누군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바로 이 동자의 이름이 ‘악착동자’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열심인 악착동자는 늘 시간에 쫓겨서 번번이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놓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이미 반야용선이 출발했지만, 배에서 밧줄이 하나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악착동자는 이 밧줄을 악착같이 붙잡고 마침내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누구라도 ‘맡은 일에 충실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폐 터널의 화려한 변신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청도와인터널은 ‘감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변에는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감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서 가을에 찾으면 더욱 운치가 돈다. 청도에서 재배되는 감은 그 모양새가 ‘마치 소반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청도반시’ 라 부른다. 이 청도반시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씨가 없다는 특성을 살려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 와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데는 그에 적합한 시설이 있어야 한다. 청도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폐 터널에서 풀었다. 1904년부터 1938년까지 사용했던 남성현 터널을 와인을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시설로 이용한 것이다.
남성현 터널은 연중 실내온도가 섭씨 13~15도 내외인데다 습도를 60~70%로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와인을 숙성시키는 데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약 1km에 이르는 남성현 터널의 천정은 황토벽돌로 조성했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이 벽돌에서는 상당량의 음이온이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온은 울창한 숲이나 폭포, 참나무숯 등에서 많이 방출되는데 우리 인체에 긍정적인 효과(공기 정화, 자율신경계 조절)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품과 절제의 미학 보여주는 고택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는 오랜 옛날부터 밀양 박씨들이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다. 곳곳에 오래된 한옥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한 집은 현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운강고택이다.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1479~1560년)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서 후학을 양성하던 옛 서당 자리에 후손들이 세운 한옥 건축물이다. 1809년에 박정주가 살림집으로 처음 건립했고, 1824년에 운강 박시묵이 중건했으며 1905년에 박순병이 중수했다. ‘운강고택’이라는 당호는 운강 박시묵의 호를 따서 붙였다.
운강고택은 주어진 공간을 합리적으로 잘 활용한 조선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상류층 가옥 가운데 하나다. 남자와 여자, 주인과 하인의 공간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방의 한옥과는 달리 좌우비대칭형 대문채가 골목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는 찬바람과 나쁜 기운이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배치로 추정된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 오른쪽에 중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어른들의 공간인 큰사랑채는 기단이 2단, 자녀들의 서당 역할을 하던 중사랑채는 기단이 1단으로 되어 있다. 큰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꽃담에는 거북의 등이 기와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큰사랑채 옆에는 여성들의 출입문인 일각문이 있다.
- 청도 감나무
- 영남알프스의 황금빛 하늘억새길
높은 산에서 만나는 억새와 여명
영남알프스는 경상북도 청도군을 비롯해서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양산시 등에 속해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9개의 산 즉, 운문산, 재약산,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고헌산, 문복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청도군에 속해 있는 산이 운문산이다.
운문산의 여러 등산코스 가운데 초가을에 찾으면 좋은 곳은 ‘석골사 코스’다.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고찰이다. 청도에 있는 운문산을 밀양에 있는 석골사에서 오르는 것은 현재 운문사에서 운문산으로 오르는 등산코스가 생테계를 보호하기 위해 입산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골사 코스는 운문산 서쪽 자락에 있는 석골사를 출발해서 상운암계곡을 거쳐 운문산으로 오르는 코스다. 석골사 코스의 등산로는 곳곳에 철계단과 안전로프를 설치한 구간이 많을 정도로 가파른 편이다. 하지만 운문산 정상에 올라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을 바라보는 순간 ‘힘든 산길’에 대한 기억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운문산 정상에서 몽환적인 여명과 함께 멋진 일출도 감상할 수도 있다. 석골사 코스의 산행거리는 4.4km로 약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영남알프스에는 ‘하늘억새길’이라는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하늘억새길은 영남알프스를 보다 가까운 곳에서 느낄수 있는 순환형 탐방로다. 탐방로의 이름에 ‘억새길’이 들어가 있는 것은 이 탐방로 곳곳에서 억새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알프스의 사자평 고원, 신불산과 영취산 사이의 넓은 평원,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있는 간월재는 오래전부터 억새여행지로 유명하다. 운문산 정상 주변에서도 억새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