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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잊은 이에게
    명주는 없다
    전통의 3대 명주

    • 글. 강시내
  • 무엇이든 새로운 게 각광받는 요즘 시대에 ‘전통’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술이다. 한말 시인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 감홍로(甘紅露), 전주 이강주(梨薑酒), 정읍 죽력고(竹瀝膏)를 조선의 3대 명주로 꼽았는데,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역사의 명주, 제대로 알고 즐겨 보자.
감홍로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는 낭만의 술, 감홍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당대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의 감홍로가 있다.”라고 했다. 또 판소리 <수궁가>에는 자라가 토끼의 간을 빼앗기 위해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으니 함께 가자.”라고 하는 장면이 등장하니 그 맛에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감홍로는 탁주나 청주, 약주 등 곡주를 증류한 소주에 꿀로 단맛을 내고 장미, 매화, 인삼, 산사 등의 꽃과 약재를 넣어 빚는데, 이때 넣은 주재료가 장미면 장미로(薔薇露), 매화면 매화로(梅花露) 등 다른 이름을 붙이는 혼성주(混成酒)다. 꽃과 약재가 함께 쓰이는 만큼 꽃향기와 계피 향의 어우러짐이 감홍로의 매력이다.
첫맛은 단맛이 나면서 뒤이어 알싸한 계피 향이 입안에 퍼지는 감미로운 술이다.

이강주
영원한 건배주, 이강주

이강주는 배 이(梨), 생강 강(薑), 술 주(酒) 그 이름에 담긴 대로 배와 생강을 주재료로 하고 여기에 울금, 계피 등을 더한 맑은 술이다. 배의 시원한 청량감과 생강의 알싸함에 노란색을 내는 울금 그리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주는 아카시아 꿀이 어우러져 독특한 향과 맛을 낸다. 역사적으로 이강주는 일종의 ‘건배주’로 사용될 만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고종 때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에 이강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현대에 들어서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국가 주요 행사에 대표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전북 전주에서 이강주가 생산되고 있는데, 1987년 조정형 명인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이강주를 현대화, 대중화하면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죽력고
쓰러진 이도 일으키는 약주, 죽력고

전라도 지방은 대나무 주산지인 만큼 대나무를 활용한 식문화가 발달했다. 이 중에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인 ‘죽력고’가 있다. 죽력은 푸른 대의 줄기를 숯불이나 장작불에 쪼여 흘러나오는 수액 같은 기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죽력을 섞어 증류한 술이 바로 죽력고다. 죽력을 추출하는 데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 한때 그 전통이 끊길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많은 전통주가 약재를 사용하여 약주로도 쓰였다고 전해지지만 특히 죽력고에 대해서는 역사서나 구전에서 그 약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발견된다. 명나라 때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혈압을 다스리고 중풍 등 혈관관계 질병과 기관지 천식, 어혈을 풀고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와 해열작용에도 효과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료출처: 『한국의 전통명주1: 다시 쓰는 주방문』, 박록담, 2005, 코리아쇼케이스
이미지 출처: 감홍로-gamhongro43.modoo.at / 이강주-leegangjumall.com / 죽력고-태인양조장.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