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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정취의
    정수를 거닐다

    캐나다의 퀘벡
    VS
    한국의 순천

    • 글. 임산하
  • 캐나다의 퀘벡과 한국의 순천은 우리가 상상하는 가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각자의 모습으로 충분한 가을 정취를 내뿜는 두 지역을 천천히 거닐어 보자.
시간이 만들어 낸 단풍과 도시의 조화

양쪽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나타내는 빨간색이 있고 흰 바탕 중심에 단풍잎을 품고 있는 캐나다 국기는 그 모습 때문에 ‘단풍잎기(Maple Leaf Flag)’라고도 불린다. 가운데 단풍은 캐나다를 나타내는데, 그래서 ‘단풍국’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가을은 절경을 이루는 단풍으로 가득하다. 특히 미국의 국경과 맞닿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부터 퀘벡 시티(Quebec City)까지 이어지는 ‘메이플 로드(Maple Road)’에서는 울긋불긋 수놓인 광활한 단풍나무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수식 없이 단풍나무를 뜻하는 ‘메이플’ 그대로를 이름에 담은 것만으로 기대를 하게 만드는데, 실제 약 800km에 달하는 길 위에서는 끝없는 가을빛 속을 거닐 수 있다. 메이플 로드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퀘벡 시티는 퀘벡 주의 주도(主都)이자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긴 세월 단풍나무가 만들어 낸 풍광과 도시의 조화가 실로 장관을 이룬다. 구시가지로 불리는 올드 퀘벡(Old Quebec)은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습에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Chateau Frontenac Hotel)이 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성곽처럼 짓는 르네상스 풍의 샤토 스타일 건축물인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퀘벡 시티 어느 곳에서도 쉽게 눈에 띌뿐더러 이동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퀘벡 시티의 랜드마크로도 불린다. 퀘벡 시티의 아름다움에 배경이 되는 건물로서도 충분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퀘벡 시티는 더욱 빛나고 찬란하다.

넉넉한 휴식을 선물하는 아브라함 평원

샤토 프롱트낙 호텔에서는 북아메리카 동부를 지나는 세인트로렌스(Saint Lawrence)강이 내려다보이는데, 그 강줄기를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아브라함 평원이 있다. 아브라함 평원은 매 계절을 뚜렷이 품는 곳으로, 마을 곳곳의 풍성한 단풍과 드높은 하늘 그리고 그 모습을 거울처럼 담고 있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선명함을 한눈에 마주할 수 있다. 퀘벡 주민들에게는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고, 여행객들에게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아브라함 평원. 이곳은 1759년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아브라함 평원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가 있어 ‘전장 공원’이라고도 불리지만 이제는 산뜻한 아침을 맞이하고 조용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평평한 하루’를 선물하는 곳이다.
아브라함 평원에서는 평안을 넘어 잠시 태평해져도 된다.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이곳. 잠시 눈을 감으면 가을바람이 가벼이 마음을 안아 줄 것이다.

  •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으로 펼쳐진 세인트로렌스강
  • 넉넉한 휴식처 아브라함 평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드넓은 풍광

동부 국경지대 근처에 위치한 퀘벡은 캐나다 원주민의 말로 ‘강이 좁아지는 곳’을 일컫는다. 세인트로렌스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 위치한 퀘벡 시티에는 단단한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프랑스가 점령했던 퀘벡을 빼앗은 영국이 미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1765년부터 총 길이 4.6km의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올드 퀘벡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제 성곽은 올드 퀘벡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한 것처럼도 보인다. 여전히 1608년 프랑스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개척했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올드 퀘벡. 마치 역사책 속 이미지가 살아난 것만 같다. 성곽은 역사의 요새가 되어 주는 동시에 후대 사람들에게 찬란한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산책로가 된 성벽을 따라가면 벼랑 아래의 드넓은 풍광을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산책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뒤프랭 테라스(Dufferin Terrace)가 있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세인트로렌스강 사이에 놓인 이 산책로에서는 벤치에 앉아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곡을 들으며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밤 산책은 단연 최고다. 강의 잔물결에 비치는 가로등과 단풍나무의 이색적인 어우러짐에 계절뿐 아니라 시간까지 잡아 두고 싶어질 것이다.

밤을 품은 뒤프랭 테라스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세인트로렌스강 사이에 놓인
뒤프랭 테라스에서는
벤치에 앉아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곡을 들으며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TIP 퀘벡 시티의 세인트로렌스강에서는 유람선 여행도 가능하다. 강에서 올려다보는 퀘벡 시티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고찰이 품은 고즈넉한 자연의 풍취

‘대한민국 생태수도’라 불리는 순천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선정됐을 만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다. 자연은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지금’을 누릴 수 있게 하는데, 특히 순천의 가을은 남다른 선명함을 자랑한다. 순천에서는 고찰과 어우러지는 단풍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조계산에 위치해 있는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무소유의 뜻을 전한 법정스님도 이곳의 산내 암자인 불일암에서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사이사이로 단풍의 멋이 그윽하게 퍼지는 송광사. 뒤편으로는 붉게 물든 조계산이 풍성하게 펼쳐져 있어 가을의 정취가 한껏 오른다.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더욱 동쪽으로 가다 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선암사가 조용히 반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측간’으로 불리는 선암사 해우소는 볼일을 보지 않아도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 꼽힌다. 일찍이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라”며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자연이 주는 위로의 다른 모습이다.

가을을 두른 송광사


단풍의 멋이 그윽하게 퍼지는 고찰.
뒤편으로는 붉게 물든
조계산이 펼쳐져 있어
가을의 정취가 한껏 오른다.

마음의 소란을 사라지게 하는 순천만

단풍을 즐겼다면, 이제 갈대밭으로 걸음을 옮길 차례다. 세계 최고의 연안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습지(이하 순천만)는 그 광활함과 풍성함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순천만은 약 160만 평의 갈대밭과 약 690만 평의 갯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수치를 듣고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넓이다. 실제 순천만을 가면 가장 단순한 생각이 먼저 든다. 땅은 넓고 하늘은 높다는 것. 자연은 원래 한없으니, 우리가 감히 자연을 점령해 보려 하는 것은 허튼 생각이라는 것. 약 2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넓은 순천만 갈대 길은 일몰 시간에 걷는 것을 추천한다. 황혼 무렵 넘어가는 햇빛에 갈대밭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그 시간, 사이사이로 갈대의 그림자가 져 명암이 교차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쉼 없이 울리던 마음의 경적들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선물, 바로 정화(淨化)다.
순천만에서는 해마다 ‘순천만 갈대축제’도 열린다. 비록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 예정이지만, 잔잔하게 일렁이는 갈대밭은 화면 너머에서도 충분히 눈부실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정답게 물드는 낙안읍성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순천에는 조선시대 마을의 원형이 보전돼 있는 곳이 있다. 사적 제302호 낙안읍성으로, 1397년 일본군의 침입에 대항해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은 것을 1626년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석성(石城)으로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그 덕에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낙안읍성은 실제 108세대의 주민이 살고 있는 전통 마을로, 정지해 있지만 정지돼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꾸준히 만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구조의 초가집과 가가호호 에두른 돌담이 옛 자취를 느끼게 해 줄뿐더러 남원 광한루, 순천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 불리는 낙민루와 동헌(東軒), 객사(客舍) 등이 남아 있어 마을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낙안읍성에서는 낮은 집들 덕에 사방으로 트인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다. 석양 무렵에는 초가집과 하늘이 뜨겁게 물드는 장면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데, 그 순간 초가집이 숨기고 있던 진짜 토색이 드러난다. 붉음과 따뜻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민초의 역사도 보이는 듯하다.
순천의 가을은 다채롭다. 그리고 그 다채로움은 언제나 자연 속에서 피어난다. 어느 곳에서나 자연이 맞닿아 있는 순천의 소담하고 풍성한 가을빛 속으로 풍덩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 선암사의 가을
  • 석양에 물든 낙안읍성

TIP 순천만습지에서는 생태체험선에 승선할 수 있다. 순천만에 서식하는 철새를 탐사하거나 선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주위를 구경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