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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장의 미래는?

    공매도의 기능과
    역할 검토

    • 박연미 경제칼럼니스트
  • 공매도는 주가의 하락에 베팅해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공매도가 주식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특징을 살펴보고, 한국 증시가 견지해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매도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다

가까이 지내는 증권사 간부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작년 증시에서 어느 연령대 직원들 수익률이 제일 높았는 줄 알아요? 용띠들이야.
용띠.” 처음에는 ‘76년생 용띠’를 떠올렸다. 한데 듣고 보니 그 얘기가 아니었다. “이 친구들은 겁이 없더라고. 증시가 너무 불타면 우린 이카루스의 날개를 떠올리거든. 근데 용띠들은 기름을 부어요. IMF랑 금융위기 겪어 본 우리 세대는 감히 못할 일이지.” 여기까지 듣고야 알아챘다. ‘아, 88년생 호돌이 용띠 얘기구나.’
수년 전 헤지펀드 시장 초기에도 X, Y세대 대표들이 주목받긴 했지만, 이건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년처럼 롤러코스터를 탄 증시에서 ‘88년 용띠’가 백전노장 ‘76년 용띠’를 추격했다니. 세상이 뒤집힌 코로나 시대를 절감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작년, 한마디로 우린 총 맞았다. 코로나19가 당긴 방아쇠는 사회 전반을 꿰뚫었고, 그중 가장 변화가 큰 시장이 있다면 단연 증시를 꼽겠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속에 지수를 방어한 동학개미에 이어 미국 증시를 드나드는 서학개미, 나아가 군대에서 투자하는 병정개미까지 등장했다. 그렇게 증시에 뛰어든 개미 선수단이 줄잡아 800만 명, 이 가운데 60%에 이르는 약 600만 명이 ‘불장’이었던 지난해에 계좌를 틀었다. 여기서 절반 이상은 ‘MZ세대’로 불리는 20대와 30대 몫이다. 가진 것도 물려받을 것도 없는 MZ세대에게 증시는 절박한 동아줄이다. 증권사에서 빚내 투자하는 20~30대의 신용 융자 비율이 1년 새 세 자릿수로 폭증한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기성세대를 향해 가는 내 포지션은 그래서 이해 반, 걱정 반이다. 엔터주 공모 직후 “주가가 떨어졌으니 환불할 수 있냐.” 하던 이들도, 주식투자 지침서를 베스트셀러 1등으로 밀어 올린 것도 이들로 짐작돼서다. 증시의 숙환 같았던 공매도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부력에도 이 젊은 투자자들이 상당히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등판하게 한 ‘나는 공매도가 싫어요.’라는 구호는 ‘제발 공매도를 멈춰요.’로 읽힌다. 어느 틈에 ‘금지 천국, 허용 지옥’ 구도가 만들어졌고, 금융위원회는 결국 5월 2일까지 한 번 더 주식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

공매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우려

증시 참가자라면 이제 낯설지 않을 ‘공매도(空賣渡)’는 쉽게 말해 내게 없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주식을 사 되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의 하락에 베팅해 비싸게 팔고 싸게 사서 갚았다면, 애초에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았어도 수익을 낼 수 있다. 작년 미국 증시를 혼란에 빠뜨린 트럭 없는 트럭 회사 ‘니콜라’ 사태처럼, 기업가치 이상으로 급등한 주가에 과속방지턱을 댄다는 장점이 있지만, 외국인이나 기관이 주도해 특정 기업의 주가를 고의로 낮춘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외국인이나 기관에겐 쉬운 공매도가 개인에겐 사실상 막혀있는 데다, 불법인데도 무차입 공매도가 드물지 않았다는 점 역시 개미들을 흥분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개인 투자자들의 열기를 낮추는 공매도의 여러 문제점 속에서 금융당국이 다시 한 번 쉬어 가길 결정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둔 여의도의 기류도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공매도를 다루는 방식이 좀 걱정스러운 건, 하나의 금융기법인 공매도가 절대선 혹은 절대악으로 규정되는 상황 때문이다. 최근 미 증시를 헤집어 놓았던 일명 ‘게임스톱 사태’를 고려하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결말이다. 한국의 동학개미에 비견될 미국의 로빈후더들이 봉기하면서 기관이 단기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진 못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공매도 거래 대금의 역할

‘삼천피(코스피 3000)’에 이어 ‘천스닥(코스닥 1000)’ 시대가 열리면서 올 초에만 개미들은 10조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으니, 대량으로 주식을 내다 파는 세력은 누가 됐든 곱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개미 중 한 사람인 나 역시 투자 종목에 공매도 잔고가 늘어난다면 당장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크고 길게 보아 금융 시장 전체의 이익과 효율성에 어느 쪽이 부합하는지는 좀 더 냉철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증시를 고무대야에 비유해 보자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물량이 수용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넘쳐날 때 일부가 대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식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기존 주주 입장에선 방어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겠지만, 단기 매도 물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공매도가 반드시 가격 하락만을 유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빌린 주식을 다시 사들여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매도만큼 매수 주문이 늘어나는 효과도 생긴다. 잠시 정지 신호를 주지만, 유동성 공급과 거래를 활발하게 만들어 증시 전반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일평균 거래대금에서 공매도 거래 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에 그친다. 이 적은 비중의 공매도 거래 대금이 시장을 움직이는 데에는 개인의 동조 심리가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체급 구분 없이 붙는 증시의 특성 때문에 특정 기업에 공매도 잔고가 늘어나면 개인들은 긴장한다. 개인들이 모르는 악재를 프로 투자자들은 알고 있다는 소문이 메신저로 번져 나가면 투매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공매도 잔고가 큰 기업의 주가가 단기에 급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때 개인 투자자는 일방적인 피해자일까,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 참가자일까, 한 번쯤 고민해 볼 부분이다.

저가 매수의 타이밍을 만드는 공매도

공매도가 갖는 또 다른 기능은 저가 매수의 타이밍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주가가 조정 없이 내달리기만 하면, 첫 차에 탑승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좀체 기회가 오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한미 양국 증시에선 뚜렷한 최대공약수가 발견됐는데, 악재에는 둔감하고 호재에는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을 ‘희소식 민감장’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예컨대 ‘실적이 나빴지만, 시장의 전망치보다는 괜찮았다.’든가,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나빠서 정부가 돈을 더 많이 더 오래 뿌려 댈 수 있으니 호재’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난무했다. 이런 장에서 공매도의 기능이 사라지면, 이론적으로는 적정 가치를 뛰어넘고도 주가가 우상향 곡선만 그리게 된다. 흔히 익절의 적절한 타이밍이라 일컫는 ‘어깨’의 지점을 가늠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주식의 손바뀜은 줄어든다. 하지만 증시에는 현재의 주주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불펜에는 언제든 기회를 보아 등판하고자 하는 선수단이 존재하고, 홈팀뿐 아니라 원정팀을 응원하는 공매도 세력도 시장을 구성하는 플레이어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쉼 없이 달려가던 어느 날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면역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주가를 폭락시키는 악재가 될지도 모른다. 공매도는 그런 충격을 줄이는 에어백 역할을 한다.
물론 거래량이 적고 유동성 공급이 적은 일부 종목에 과도한 공매도 물량이 몰린다면 인위적인 주가의 하락이나 투기적 거래를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 때문에 제도의 순기능 전체를 외면한다면 기회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이러한 공매도의 문제점은 뒤꿈치에 구멍이 난 양말을 깁는 마음으로 금융당국이 꼼꼼히 바느질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공매도 잔고가 이상 급증할 경우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고, 지난해처럼 주가가 단기 급락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중단할 수 있는 정책적 융통성이 있는 만큼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공매도 제도를 고쳐 쓰는 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외풍에 취약한 이른바 작은 종목에 대한 ‘작전’ 세력의 장난은 주가 하락뿐 아니라 인위적인 부양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위적 부양 이후의 시나리오는 영화에서 보듯 대개 비극적이다.

흥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매도를 구현하는 거래 방식에 대한 불만도 찬찬히 살펴보자.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로에게 주식을 빌리는 대차 시장에 비해 개인은 기관에게 주식을 빌리는 과정이 쉽지 않다. 개인의 대주 시장이 기관 간 대차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이다. 금융당국도 이런 지적을 수용해 개인이 보다 쉽게 주식을 빌리고 공매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단 증거금이나 상환 기간 등에서 큰손인 외국인이나 기관과 같은 조건을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대출 시장에서도 신용등급이나 소득, 담보에 따라 이자율과 대출 가능 금액이 나뉘듯 주식을 빌리고 갚는 시장에서도 자금 동원력이나 신용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기관 사이의 대차거래에서 증권사들은 105%의 증거금을 담보로 제공해야 주식을 빌릴 수 있다. 반면 개인 투자자의 경우 통상 140%의 증거금을 내야 대주 시장에서 주식을 빌려줄뿐더러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주식을 빌려주는 기관도 많지 않다. 상환 기간도 다르다. 개인에겐 길어야 두 달의 짧은 대여 기간을 허락하지만, 기관은 만기 연장이 쉽다. 대신 언제든 상환 요구를 받을 수는 있다.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절차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신용도에서 비롯되는 대출 조건의 차이로 볼 여지가 있다.
여러 고민거리 속에서도 공매도 논란 이후 나온 통계들은 여전히 개미 투자자들의 부아를 돋운다. 증권사들이 공매도로 7년간 무려 3500억 원을 벌었고, 70% 이상의 수익이 외국계에 돌아갔다는 통계 아래엔 “이래서 외국인 기관 판”이라거나 “이런 공매도를 허가하자는 금융위는 누구 편이냐.”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아마도 공매도만 아니라면, 작년의 마법 같은 랠리가 재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우상향 랠리는 올해 초 11주 만에 막을 내렸고, 2월 들어선 구간마다 과속방지턱이 설치된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증시가 호랑이 등에만 올라타고 있어도 쭉 가는 ‘물수능’ 같은 장이었다면, 올해는 중간중간 벙커를 빠져나가야 하는 ‘불수능’ 같은 장이 될 전망이다. 선진국 중에선 한국만 유일하게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이면 짐 싸겠다는 외국인들의 으름장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지만, 국내 증시의 약 32%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입이 댓 발 나와 있다. MSCI나 FTSE 등 글로벌 지수 산출 기관들은 국가 신용등급 평가에서 공매도 허용 여부를 중요한 시장 평가 기준으로 보는 게 현실이다. 주식 파는 사람이 값 떨어뜨려 밉다고 못 팔게 만들면 손님이 들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손님 줄어든 시골 5일장은 개장 날 판이 벌어지다가 대개 사라져 갔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매력 떨어지는 5일장 신세가 되도록 만들 수야 없는 노릇 아닐까. 값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흥정은 계속돼야 한다.

주가가 단기 급락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중단할 수 있는
정책적 융통성이 있는 만큼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공매도 제도를
고쳐 쓰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