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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태권도의 간판
이대훈 선수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무술이자,신체를 단련하는 운동이기도 한 태권도. 우리나라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스포츠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접하는 이들이 많다.
이제는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운동이기도 하다. 수많은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세계 1위’의 자리를 지켰던 이대훈 선수를 만났다.
*<with IBK> 2월호의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했습니다.

writing. 정라희 photograph. 김범기

유망주를 넘어 레전드가 되다

태권도를 배워 본 적이 없더라도 태권도 선수 ‘이대훈’의 이름은 안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첫 출전에 금메달을 따더니 이후로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하는 기록을 썼던 그다. 그뿐인가. 매해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시리즈를 휩쓸고, 올림픽에서도 두 차례나 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고등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태권도 남자부에 국가대표 1진으로 선발된 이후 지난해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11년 동안 국가대표 자리를 지켰다. 세계 랭킹 1위.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딴 금메달만 21개다.
문득 오래전, 그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포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태권도’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기대를 한껏 받는 젊은 선수들이라면 한 번쯤 세워 봄 직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대훈 선수는 그 말을 ‘현실’로 이루어 내었다.
“제가 갓 대표 선수가 되었을 때는 다른 유명한 선배님들이 국제대회에서 활약하셨던 터라, 당시에는 저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국가대표로서 11년 동안 꾸준히 국제대회에 얼굴을 비추니 이후로 많은 분이 알아봐 주셨어요. 여전히 예전의 저처럼 자신을 통해 태권도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지닌 후배들이 많아요. 선수로서 태권도를 알리는 일은 현역 선수들에게 맡기고, 저는 저대로 태권도를 알리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2021년 7월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대훈 선수가 공식적으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날은 12월 31일. 새해를 맞이하며 시합을 뛰는 선수로서의 삶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그의 일상에는 운동이 함께한다. 현역 때부터 출연했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JTBC <뭉쳐야 찬다>에 출연하고 있고,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체육학을 공부하며 한창 논문을 쓰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스포츠

현역 시절, 이대훈 선수의 장기는 긴 다리를 활용한 발차기였다. 단순히 점수만을 챙기는 경기가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경기 운영이 태권도를 보는 이들에게 남다른 재미를 주었다. 실제로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16강부터 결승까지 이어진 네 경기에 모두 12점 이상 점수 차를 내며 승리를 거둔 덕에 ‘12점 차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기록 경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겨루는 태권도는 매번경기 때마다 흐름이 달라진다. 세계랭킹 1위의 선수라고 해도 백전백승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의외의 선수에게 지는 일도 생긴다. 이 같은 의외성이 바로 태권도의 묘미. 그렇기에 시합에 임할 때 체력은 물론 정신력도 탄탄하게 갖추어야 한다. 한 번의 경기에 무너지지 않고 앞날을 바라보며 스스로 단련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태권도를 통해 쌓아 가는 수양이 아닐까.
이대훈 선수는 태권도를 하면서 ‘잘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에 더욱더 무게를 두었다. 선수로서 스스로 생각한 장점 역시 ‘성실함’이었다. 다섯 살에 태권도를 시작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의 길을 걸은 이후, 우직하게 훈련을 이어 가며 실력을 키웠다. 대외적으로 ‘잘하는 선수’임에 틀림없지만 그는 운동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로움은 잘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한두 번 반짝 열심히 하고 마는 것이 아닌, 꾸준히 할 때 비로소 빛나는 활동이 운동인 셈이다.
“굳이 운동을 잘해야 할까요. 인생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살면서 건강한 것이 제일 좋다’고 많이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이 건강하게 지내려면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해 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태권스쿨에서도 잘하는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데 주력하기보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신체 활동을 즐기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선수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에 대한 조언도 해 준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사람마다 성향도 제각기 다르잖아요. 한 공간에서 운동하더라도 참여하는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조금씩 다릅니다. 지나치게 활달한 아이들은 운동을 통해서 자제력을 익히고, 나서길 주저하는 아이들에게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어요. 특히 한국에서는 태권도를 어릴 때 주로 배우는 편인데요, 아이들이 운동을 하면서 힘들어하기보다 체육관에서라도 뛰고 즐기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굳이 운동을 잘해야 할까요.
인생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살면서
건강한 것이 제일 좋다’고 많이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이 건강하게
지내려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리는 전령사

이제는 현장에서 한걸음 물러난 은퇴 선수이지만, 요즘 이대훈 선수는 전보다 바쁜 일상을 소화하고 있다. 방송을 하면서 대중과의 접점은 더욱더 늘었다. 특히 <뭉쳐야 찬다>에서는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에이스’ 로 불릴 만큼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축구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지도하시는 코치님이나 감독님 눈에는 아마추어 생활체육인의 수준으로 보일 거예요. 전문가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건, 저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죠. 현역 시절에 출연했을 때는 부상의 우려가 있어서 주변에서 걱정도 하셨는데요, 이제는 은퇴 이후에 할 수 있는 색다른 운동을 찾은 기분으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방송을 이어가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태권도 선수인 자신이 꾸준히 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대중이 ‘태권도’라는 종목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가운데 ‘저 친구 누구지?’ 궁금해하시다가 ‘아, 태권도 선수였지’ 하고 자연스럽게 태권도를 연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방송 활동은 은퇴한 선수로서 태권도를 알리는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태권도를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태권도를 알린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요즘 이대훈 선수는 학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의 우선순위는 논문 작성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다. 그 자신이 오랜 기간 실전에 뛰었던 선수였기에, 운동선수들의 훈련방식과 마인드컨트롤이 경기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많다. 이와 함께 영어 공부를 병행하며 국제무대에서 태권도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외교 사절단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특정 대회가 아니라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대표로 뛰었던 기간 자체가 가장 큰 보람으로 남아 있어요. 국가대표를 꿈꾸었던 한 아이가 국가대표로 성장해서 많은 분에게 태권도를 알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까요.”
이대훈 선수가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지난 10여 년 사이, 태권도를 대하는 세계인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보다 태권도를 더 즐기고 좋아하는 국가들이 늘었다. 최근 그에게는 한 가지 더 몰두하는 부분이 있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면서 요즘은 스포츠보다 실내에서 하는 컴퓨터 게임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요. 운동선수로서 스포츠를 활성화할 방법이 없을지 더 큰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 싶습니다.” 이처럼 태권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고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대훈 선수. 이제까지의 활약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서 태권도를 비롯한 스포츠의 의미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금빛 발차기로 전한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도 그는 건강한 신체와 단단한 정신으로 앞을 향해 정진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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