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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몰입하는
‘작심삼일’의 시간
코로나19로 힘든 시간 속에서도 여지없이 새해는 찾아왔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은 참으로 다양하다. 1일 24시간, 1주일 168시간, 1년 8,766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객관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 다만 주관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떤 사람의 시간은 밀도 있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writing. 한근영(한국몰입연구소 소장,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의 힘> 저자)
우리의 목표가 작심삼일에 그친 까닭
새해가 되면 대부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어 하고, 체중 감량이나 운동, 공부, 자기계발과 같은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성취해 내기도 하지만 작심삼일이어서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우스갯소리로 그럼 3일마다 한 번씩 목표를 새로 세우면 되지 않겠느냐고들 하는데, 이것이 단순히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목표는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어떤 행동을 습관화시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60일 정도라고 한다. 작심삼일을 스무 번가량 하면 유익한 행동들을 습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스스로 세운 목표일지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기대와 능력치가 실제로는 잘 일치하지 않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의지박약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기술의 부재인 셈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해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그 밀도는 사람마다 사뭇 다른 이유이다.
그렇다면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가지 다른 경험, 다른 표현이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연구된 개념 중에는 ‘몰입’ 혹은 ‘절정 경험’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들은 밀도 있는 시간의 한 축을 차지한다. 몰입 연구로 잘 알려진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박사는 ‘명확한 목표와 정확한 피드백이 주어질 때 우리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라고 몰입의 요건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했다. 작심삼일에 그치는 우리 목표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고 하더라도 ‘달성 가능한 수준’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생활 리듬에서 동떨어진 머나먼 이상 속에 존재하는 목표이다. 그리고 주어지는 피드백이라고는 ‘또 작심삼일에 그친 나’에 대한 자괴감과 주변의 비난 등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목표를 잘 세우고, 정확한 피드백을 받아 몰입한 시간의 결과는 어떨까?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명확하게 살아온, 똑 부러지는 몰입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바쁘고 정신없이 생산성의 시기를 보낸다. 일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이 속한 조직에 헌신적인 태도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나아가 자신이 직접 기업을 세우고 확장시키며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는 등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성취와 경쟁에 얽매이면서 끊임없이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그런 종류의 삶만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찬찬히 고민해 봐야 한다. 이렇게 ‘더할 나위 없이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끝에 생애 초기 자신이 설정한 삶의 목표에는 표면적으로 도달하였으나 공허한 느낌을 호소하는 이들을 상담실에서 많이 만난다. 내 꿈이 현실이 되었으나 그 꿈을 이룬 순간 허망한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는 꿈을 찾아, 목표를 좇아 열심히 살아왔건만 막상 도달하고 나니 내가 온 곳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던가 하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허망한 느낌을 느끼게 될지언정 명예와 부,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다.
자신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우보다는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는 경우의 후회가 훨씬 더 오래 간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후회는 나약함의 증거도 아니고, 인생이 원래 허망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 나서는 다시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자 생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산꼭대기에 동그란 돌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고, 떨어지는 돌을 다시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벌을 받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도 그가 하는 것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시포스와의 차이점은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점, 시시포스보다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시시포스의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또 달라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와 가치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이 안내하는
삶의 방향
원래 인생에는 의미가 없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의미 없는 인생 안에서 내가 평생 추구해야 할 의미와 가치들을 찾지 못한다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를 반복하는 표면적인 ‘밀도 있는 시간들’은 매우 소모적이 되고, 지치게 한다. 목표에 도달하더라도 ‘내가 이걸 왜 했나’ 하는 허망함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 남부럽지 않은 삶을 꿈꾸고 나의 자손들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전부이며 가치인지는 한 번 살펴야 할 일인 것이다. 나의 삶이 성취를 하고 경쟁을 위한 삶이었다면, 그것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 ‘밀도 있는 시간’,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은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고, 성취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밀도 있는 시간들에 도달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에 ‘몰입’하면서도 가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내가 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이제껏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았다면, 한순간에 그것이 될 리는 만무하다. 다만, 어느 순간 인생의 허망함이나 덧없음에 대해서 깨닫는 때가 온다면, 이제야 비로소 보다 더 깊이 있고,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새해를 맞아 작심삼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매년 찾아오는 새해이지만, 이번에는 그 작심삼일의 목표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선택을 하는 첫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