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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의 낭만이 가득한
    오스트리아 빈

    • 편집실
  • 오스트리아 빈은 ‘문화예술’의 정수를 간직한 도시다. 희대의 음악가들을 탄생시키고 역사적인 건축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현대에 낭만으로 폭발한 빈의 고전적 매력,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오스트리아 빈
  • 빈 소년합창단(이미지 출처_빈 소년합창단 공식 홈페이지)
  • 미하엘 문
청아한 미성으로 마음을 녹이다, 빈 소년합창단

예술이 넘실대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Wien). 국가의 수도이지만 개발 대신 보존을 택한 낭만의 도시인 이곳에는 문화의 선율이 흐른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곳이니만큼 빈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우리를 감싸는데, 그 선두에는 ‘빈 소년합창단’이 있다. 청아한 미성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녹이는 ‘빈 소년합창단’은 변성기를 겪기 전 ‘신의 목소리’라 불리는 맑고 깨끗한 음성을 가진 10세~14세의 소년들로 구성돼 50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함없이 오스트리아의 음악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빈 소년합창단은 149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가 궁정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빈으로 옮기면서 합창 단원을 함께 데려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교회에서 여성이 노래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궁정 성가대를 구성하면서 6명의 소년을 단원에 포함시키라 명했다.
합창 단원은 100여 명이며, 4개의 팀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각 팀은 브루크너,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라는 작곡가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출생의 작곡가이자 빈 소년합창단과 인연이 깊은데 특히 뛰어난 미성을 가진 슈베르트는 실제 합창 단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빈 소년합창단 4개의 팀은 번갈아 가며 다른 활동을 하는데, 한 팀은 오스트리아 주일 미사에 참가하고, 나머지 3개의 팀은 해외 활동을 맡는다. 실제로 주일에는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 예배당에서 빈 소년합창단을 만날 수 있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위해서도 예배당 문이 열려 있으므로 그들의 티 없이 맑은 목소리를 듣는 영광을 누려 보길 바란다.

로스하우스가 있는 미하엘 광장
오스트리아의 살아 있는 역사, 호프부르크 왕궁 경내

호프부르크 왕궁은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 등으로 이용되지만, 1918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호프부르크 왕궁에는 약 2,600개의 방이 있는데, 이는 이전 황제가 사용하던 방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법칙 때문이다. 또한, 황제들마다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궁 내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었다는 특징이 있다.
호프부르크 왕궁이 왕가 내의 알력과 그들의 이기로 건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왕궁이 지닌 건축물로서의 가치는 대단하다.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만큼 장엄한 외관은 미하엘 광장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호프부르크 왕궁은 미하엘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정문을 지키고 있는 4개의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그 생동감만으로도 왕궁의 위엄을 높인다.
미하엘 광장은 오스트리아 관광엽서에 무조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주변을 도는 관광마차에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과거의 위용과 이 공간을 만끽하고 간직하려는 후세의 정성이 가득한 곳이다.
그리고 미하엘 광장에는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재미난 건축물이 있다. 바로 로스하우스(Loos Haus)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황제가 미워한 건물’이라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함의 정점을 찍은 왕궁의 맞은편에 흔한 대리석 장식 하나 없는 그저 밋밋한 건물을 세운 것이다. 당시 황제 프란츠 1세는 이 건물을 보고 싶지 않아 미하엘 문을 봉쇄하고 그 반대편으로 다녔을 정도였다고 한다.

슈테판 대성당
웅장한 첨탑에 반하다, 슈테판 대성당

오스트리아 빈에는 또 다른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다. 바로 빈의 심장이자 랜드마크라 불리는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이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했으나, 14세기 합스부르크 왕가가 고딕 양식으로 완전히 개축하였다. 이후에도 잦은 전쟁으로 내부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던 슈테판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국민들의 성금으로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는 슈테판 대성당이 국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 건축물임을 방증한다.
107m 길이의 본당, 39m 높이의 천장, 137m에 달하는 첨탑까지 크기만으로도 위엄을 자랑하는 슈테판 대성당은 구시가지 중심부에서 그 가치를 드러낸다. 빈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이곳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데, 와인을 마신 뒤 잔을 깨뜨리고 자정에 서로 키스를 나누는 풍습이 있다. 새해의 희망과 설렘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것은 슈테판 대성당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사랑하는 작곡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른 곳이기도 한 이곳.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들어 낸 지붕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에 마음을 뺏기게 되는 슈테판 대성당. 하늘에 닿을 듯한 첨탑의 웅장함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티끌의 고민들을 안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조금 묵묵해질지도 모른다.

공연장 천장에 있는 웅장한 샹들리에까지 곳곳이 섬세한 매력으로 가득한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저렴한 입석 좌석도 있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풍성함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 이곳에서 한 번쯤 예술에 풍덩 빠지는 유쾌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내부
음악과 건축의 조화,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슈테판 대성당이 빈의 심장이라면,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Wiener Staatsoper)는 빈의 문화 심장이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파리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오페라하우스)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불리며, 규모로는 유럽에서 단연 최고를 자랑한다. 19세기 후반 구시가지의 성벽을 철거하고 링(Ring)이라고 불리는 대로를 조성하면서 유럽의 다른 오페라하우스와 견줄 만한 오페라하우스를 건축한 것이다. 1869년 완공됐으며, 당시 초연작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였다. 이후 1897년부터 구스타프 말러가 음악 감독으로 자리하면서 일류 오페라하우스로 명성을 날렸고, 이후에도 걸출한 감독들이 자리하면서 그 명성을 유지했다.
대로변에 위치한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건축물로서도 위세가 남다른데 건물 정면은 네오르네상스양식으로 꾸며져 다양한 장식과 화려함을 보여 준다. 또한 내부의 대계단을 중심으로 서 있는 여러 조각상은 공연을 관람하기 전부터 예술 작품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공연장 천장에 있는 웅장한 샹들리에까지 곳곳이 섬세한 매력으로 가득한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저렴한 입석 좌석도 있으므로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풍성함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 이곳에서 한 번쯤 예술에 풍덩 빠지는 유쾌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