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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벨랴코프일리야
이제는
내 집이 되어버린,
한국
- 글 강초희
- 사진 김범기
-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토크쇼 JTBC <비정상회담>에 나와 이름을 알린 방송인 벨랴코프일리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20살까지 자란 그는 어학연수를 위해 2003년 한국으로 넘어온 뒤 2021년인 지금까지 쭉 한국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2016년에는 귀화를 했다. 이제 그는 제2의 고향이 된 한국 사회에 논의가 필요한 것들을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는 한국인이다. * <with IBK> 9월호에 관련된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인생의 나침반을 움직인 어학연수
지금은 코로나19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체류하거나 거주하는 일이 다소 어려워졌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유입되는 외국인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들이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펼치는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중에서도 놀라운 한국어 실력으로 주목 받은 출연진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에서 온 벨라코프일리야다. 그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던 걸까?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몰랐어요. 한반도가 둘로 나뉜 분단국가라는 사실도 당연히 몰랐죠.”
귀화까지 했으니 우리나라에 대한 오랜 관심이나 특별한 인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사랑해 마지않는 한국이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는 것에 거의 없다고 고백하는 일리야.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의 면적은 세계 1위, 우리나 면적의 약 18배에 달한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요즘처럼 K문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도 아니니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우리나라를 모를 법도 했다. 그러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한국인 학생들과 친해지며 한국사람의 정(情)에 물들기 시작해 2003년 한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어학연수 생활은 그에게 한국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한 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한국어 수업 외에도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우리나라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때 부산과 경주도 찾았는데, 서울과는 전혀 다른 한국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화면 출처 : EBS 라디오 <Morning Date>
한국, 그립고 정든 나의 고향
어학연수를 끝낸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는 대신 한국에서의 대학교 진학을 택했다. 다시 한 번 한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첫 직장도 한국에서 구했다. 사회인으로서의 모든 경험을 한국에서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러시아로 돌아가야지’ 했던 마음도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고향에는 세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이는 일리야에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둘째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이 역시 일리야에게 러시아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일리야에게 세번째 의미의 고향은 어디일까? “201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적이 있어요. 7개월 정도 한 학기를 살았죠. 그 당시 한국에 정말 가고 싶었어요. 그 당시가 한국 생활 10년 차였거든요? 그렇게까지 한국을 그리워할 줄 몰랐어요.” 그에게서 세 번째 고향의 정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한국’이었다.
그 즈음부터 해서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사람들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의 인생이 한국에 있었기에 고민은 깊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데 따른 어려움도 그의 결정에 한 몫을 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를 거예요. 비자 갱신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특별한 조건이 아닌 이상 장기간 체류가 힘들거든요.”
귀화, 그리고 ‘집’에 대하여
2016년 마침내 귀화를 결심한 그는 ‘일리야 벨랴코프’라는 러시아 이름에서 ‘벨랴코프일리야’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며 진짜 한국인이 되는 과정을 밟았다. 주민번호도 생겼고, 해외 나갈 때는 대한민국 여권을 쓴다. 하지만 귀화 후 가장 크게 바뀐 것으로 그는 ‘안정감’을 꼽았다. “안정감 있게 내년, 내후년을 바라볼 수 있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장점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 데에는 귀화도 한 몫했지만, 심리적인 부분도 한 몫 거들었다. “저는 한국을 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 거고요. 한국에서 오래 살던 외국인들이 떠나는 이유 대부분이 한국 사회의 인식 때문이에요. 한국은 한민족 사회잖아요. 이민자 사회가 아니라서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데 힘들어해요. 그걸 외국인들이 못 견뎌서 결국 떠나는 거고요. 저는 괜찮아요. 전 제 생각이 중요하거든요. 이곳을, 한국을 제 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계속 살아갈 거예요.” 현재 책을 집필 중이며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다는 일리야.
그는 한국을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한국을 ‘집’이라고 표현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이든 뭐가 중요할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의 터전이 있는 한국에서 그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