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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 프렌즈 전명윤 여행작가
인생의 시간표를 벗어날
유일한 기회, 여행- 글 박혜원
- 사진 한유리
- 실연 때문에 시작했던 여행이 직업이 되었고, 또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남들이 휴가, 여행을 위해 떠날 준비를 할 때, 그는 그 나라가 가진 상처와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한다. 환상 환(幻), 때릴 타(打). 환타, 그의 여행이 특별한 이유다.
환상을 깨는 여행법
노란색 배경에 여행지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씌어 있는 가이드북 ‘프렌즈’ 시리즈. 이 책을 쓴 사람은 몰라도 프렌즈 시리즈라고 하면 대부분은 ‘아, 그 책!’하며 격하게 공감하기 마련이다. 해외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본적 있는 책자인 것.
전명윤 여행작가가 바로 이러한 책자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프렌즈 홍콩·마카오’, ‘프렌즈 베이징’, ‘프렌즈 인도·네팔’, ‘프렌즈 오키나와’, ‘상하이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서를 비롯해,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여행’, ‘환타지 없는 여행’ 에세이를 썼다.
전명윤 작가는 환타(幻打) 작가라고 불리는데, 흔히 사람들은 환타 작가의 여행은 다르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멋진, 맛있고 유명한 곳만 가지 않는다. 가이드북을 쓰지만, 가이드북에 없는 곳에 가라고 말하고, 계획하지 않은 여행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여행이 어디 말처럼 쉬울까. 여기에 대한 답변을 미리 생각이라도 했다는 듯 전명윤 작가가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쉬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반하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사랑이 시작되잖아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음이 가는, 저에겐 여행이 곧 사랑이에요. 사실 제가 상대에 집착하는 스토커 기질도 좀 있고요. 하하.”
그는 스스로를 ‘스토커 기질이 있는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말인즉슨, 남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여행을 기꺼이 한다는 의미다. 이상(異常),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라는 뜻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이상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프렌즈’ 시리즈를 비롯해 그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는 분명 이제까지 듣고 보지 못한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이야기를 쓸 땐 가난과 계급 차별, 여성 인권의 실태와 변화의 움직임 등 인도의 민낯을 들추고, 홍콩을 말할 땐, ‘범죄인 송환 반대 운동’이 일어난 배경이 무엇인지, 주말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배회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휴양지인 줄로만 알았던 오키나와가 실제로는 ‘내부 식민지’와 다를 것 없는 슬픈 땅이라는 사실도 들려준다.
- 이시가키섬의 카비라만
- 카슈미르 계곡의 스리나가르
“계획표 안에 여행을 가두지 마세요”
코로나19 이후 여행작가로의 삶, 사실 여기에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다. 여행을 하며 먹고사는 낭만적인 직업이지만, 반대로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여행작가다.전명윤 작가도 여기에 동의했다. “솔직히 작년 수익이 마이너스 90%였어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전부 까먹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워요.”
그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지던 순간, 그는 “괜찮아요. 그래도 올해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어요.”라며 해맑게 웃어 보인다. ‘어쩜 이리 단순한 것일까?’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코로나19 덕분에 여행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라며 사람들이 ‘여행’ 을 생각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하게 보면 거대한 시간표 같아요. 학교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는 그러한 인생의 계획표가 세워져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유일하게 정해진 인생 계획표를 벗어날 수 있는 ‘여행’이라는 일정에, 또다시 계획표를 그려요. 관광 명소 중심으로 코스를 자고, SNS에서 ‘핫’한 식당, 카페를 찾아 줄을 서요. 그리곤 하나라도 실패하면 자신의 여행이 망한 것처럼 좌절하죠. ‘남들 가는 곳은 꼭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일하듯 여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도 여러 번 여행 계획을 세워봤고 계획표대로 움직여도 봤다. 하지만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간 여행보다, 그렇지 않았을 때 더 좋은 책을 썼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 새로운 명소와 음식점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여행작가의 임무라면 임무이기 때문이다.
전명윤 작가는 “여행은 잘하고 잘못하는 것이 없어요.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즐거우면 그만이죠. 하지만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진 않았으면 해요. 여행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내가 내 여행을 설계하고 컨트롤하는 여행가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코로나19로 힘든 지금이 오히려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이 25년 동안 직접 경험해 본 결과 꼭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고 귀뜸했다. 인도의 ‘카슈미르 계곡’, 일본 오키나와의 ‘이시가키 섬’과 ‘이리오모테 섬’, 홍콩의 ‘란타우 섬’.
인도의 ‘카슈미르 계곡’은 무굴 제국의 한 유명한 시인이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이곳’ 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한 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일본 오키나와의 ‘이시가키 섬’은 바닷속 수심이 15m까지 확보될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리오모테 섬’은 소설 ‘남쪽으로 튀어’의 무대로 거대한 ‘맹그로브 숲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이리오모테 섬은 그가 노년 시절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홍콩의 ‘란타우 섬’은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섬 트래킹 코스로, 남다른 홍콩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추천한다.그는 해외여행이 어려운 요즘, 도전해볼 만한 국내여행지도 추천했다.
“5~9월은 아름다운 은하수를 보기에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특히 광해가 적은 안산의 ‘풍도’, ‘흑산도’ 등 신안 앞바다는 ‘은하수 투어’를 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니, 한 번쯤 방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본격적인 휴가를 앞두고 계획 짜기에 바쁜 시기, 전명윤 작가의 말처럼 잠시 계획표를 덮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나만의 여행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명윤 작가가 추천하는 ‘꼭’ 가봐야 할 국내외 여행지 BES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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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인도의 ‘카슈미르 계곡’ 카슈미르는 호수가 여기저기에 있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인도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지상의 낙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 오키나와의 ‘이시가키 섬’과 ‘이리오모테 섬’ 이시가키 섬은 일본의 숨은 명소로, 완벽하게 보존된 산호초와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볼 수 있고, 이리오모테 섬은 거대한 맹그로브 숲과 희귀동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홍콩의 ‘란타우 섬’ 홍콩에서 가장 넓은 섬으로 경치 좋은 해변부터 문화 체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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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
안산 ‘풍도’ 푸른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아기자기한 시골 섬 마을, 섬 어디서나 바다를 볼 수 있고 섬 곳곳에서 야생화를 볼 수 있다.
‘흑산도’ 신안 앞바다 인근의 흑산도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흑산도라 이름 붙여졌다. 이곳에서는 열두 번 굽어진 열두굽이길과 흑산도 지도바위를 만날 수 있다.
신안 앞바다 빛이 없고, 깜깜한 곳에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은하수. 신안 앞바다에서는 5~9월, 영롱한 별빛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