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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IBK
피플

삶을 용감하게 채색하는 여행자 손미나
두려움을 앞지르고
정확하게 도전하다

명실상부한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가 되어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손미나.
그것은 도전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계속해서 한계를 무너뜨리는 그. 작은 일은 계획해도 큰일은 저질러야 한다는 손미나에게는 자신을 이끌어 가는 무한한 힘이 있다.
*<with IBK> 9월호의 모든 촬영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했습니다.

writing. 임산하 photograph. 김범기

자신을 확장시켜 오늘을 생생히 만나다

나의 자리를 제자리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나 자신과 단절된다. 절대적인 안정 상태에서 우리의 생각은 가벼워지기보단 고갈되고, 가슴은 가뿐해지기보단 비어 버린다. 이때 ‘나’와 끊어지는 것은 결국 ‘나’다. 제자리를 고정시키지 않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서 때로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던 ‘나’를 바라보게 될 수도 있지만, ‘나’와 제대로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내가 된다. 나 자신이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자리에 한계를 두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나’와 만나는 이가 있다. 아나운서, 작가, 강연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그야말로 ‘N잡러’로서 다양한 영역을 사로잡은 그는 손미나다. 다양한 직함으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한다. 바로 ‘여행자’다.
“여행가는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여행객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탐구하려고 하는 여행자예요.”
발길을 넓히는 여행자이자 언제든 삶을 열어 보는 여행자. 어릴 때부터 호기심과 궁금증이 남달랐다던 그는 여전히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의 ‘에너지 방향’을 예로 들면 무대에서는 E, 평상시에는 I인 듯해요. 양측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성향 덕분에 활동적이면서도 차분하죠. 그 성향이 잘 어우러지기 때문인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예측 불가한 일 앞에 힘들어하지 않아요.”
밖을 바라보는 동시에 나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아나운서로서 시청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가 훌쩍 스페인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였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1997년에 입사한 뒤 2004년 스페인으로 떠날 결심을 하기까지 정말 쉼 없이 일을 했어요. 저를 채울 시간 없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갔죠. 시청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만 파내서 쓰는 것만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저를 성장시킬 동력이 필요했어요.”
여행자 손미나에게 스페인은 그 자신을 만나게 해 준 곳이다. 낯선 곳에서 채운 용기와 자유는 오늘을 좀 더 생생하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그는 말한다. 늘 똑같은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고 내 편과만 어울릴 때 ‘나’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기꺼이 즐거운 도전을 택하다

아나운서 손미나가 여행작가 손미나로 세상에 인사를 건넨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 스페인에서의 1년을 기록한 에세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열망을 품게 했다. 한 권의 책을 써 내는 각고의 시간을 버틴 그는 여전히 아나운서 손미나였지만 분명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모험을 택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 너는 자유다>의 인기로 제 앞에는 다양한 기회들이 펼쳐졌어요. 그리고 아나운서와 여행작가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고민의 결과는 ‘아, 모르겠다.’였어요. 사람이니까요. 미래는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차피 결과를 모른다면 제가 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도전 속에서 그는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렸고,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 교장,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수많은 집필 활동으로 지금껏 13권의 책을 펴냈다. 첫 책을 썼을 때만 해도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책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며 웃어 보이는 그. 하지만 그에게 집필은 고통 속에서 얻는 또 하나의 행복이다. 이후 3년 동안 파리에 머물며 장편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쓴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가장 큰 희열을 느꼈어요.”라고 말한다. 백지를 빼곡히 채우며 오롯이 작가 자신이 밀고 가야 하기에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손미나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이자, 언제나 그가 해 왔던 일인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비록 희미해 보일지라도 일단 내디디어 선명한 빛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앞을 피하지 않는 것.

지나친 책임감과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병인지도 몰라요.
유독 한국에서는 잠시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염려에 모두들 발을 구르죠.
모든 사람이 뛰는데 혼자만
걸어간다면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틈이 필요해요.
때로는 멈추는 법도 배워야죠.
존재를 충분하게 하는 여행

손미나의 에세이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을 왜 ‘휴먼 빙’이라고 하는지 아니? ‘being’,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야. 근데 넌 그거로는 부족해서 자꾸 뭔가를 손에 더 넣어야 한다는 듯이 살잖아. 네 삶엔 너무 여백이 없어. 잠시 쉬면서 너의 존재를 음미할 틈이 없으니 늘 허기가 지겠지. 우린 ‘휴먼 워킹’이 아니라 ‘휴먼 빙’이란 말이야. 그렇게 발버둥 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안에서 의미를 찾을 때 진짜 행복해질 수 있단다.”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친구가 애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충고다. 그렇다. 인간은 마냥 달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의 질주가 단지 뒤처지지 않기 위함인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지나친 책임감과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병인지도 몰라요. 유독 한국에서는 잠시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염려에 모두들 발을 구르죠. 모든 사람이 뛰는데 혼자만 걸어간다면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틈이 필요해요. 때로는 멈추는 법도 배워야죠.”
그래서 그는 여행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환경이 바뀌어야 뇌가 자극을 받아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다만 그는 꼭 어디를 가야만 여행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삶을 여행으로 만들면 된다고.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또 다른 여행은 ‘외국어 공부’가 아닐까. “사회, 역사, 환경 등이 통합적으로 녹아든 언어는 문화의 결정체예요.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면 굉장히 낯설어요. 단어뿐 아니라 표현법도 다르니까요. 우리와 차이가 있는 외국의 문화나 언어를 접할 때면 비교 대상을 ‘나’로 두게 되죠. 가치관, 개념, 세상을 보는 관점 등이 모두 다른 이들과 만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돼요.”
끝없이 열어 가는 길목에서 항상 사람을 만나 온 그는 이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을 고민한다. 사람 사이의 단절을 깨는 매개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단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부드럽지만 굳세고, 온화하지만 강인한 사람. 여행자 손미나는 오늘도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세상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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