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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배 정읍지점 지점장

    수집으로 세상을 보다, 나를 만나다

    • 이경희
    • 사진 김범기
  • 코로나19 시대, 타인을 집으로 초대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나 문경배 지점장은 기꺼이 ‘with IBK’를 위해 방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집해온 자식 같은 우표와 화폐 등을 아낌없이 공개해준 그의 시공간을 함께 엿보자.
초등학생, 우표수집을 시작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을 버티고 이겨나갈 힘을 준다. IBK기업은행 정읍지점의 문경배 지점장 역시 자신만의 취미로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사는 인물이다.
“우표수집을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어요. 당시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표수집이 유행이었고 학교 숙제로도 우표수집이나 상표수집 등이 주어졌던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우표 따먹기도 하고 그랬죠(웃음).”
대부분의 친구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우표수집을 중단했지만 문경배 지점장은 좀 달랐다.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해 잠시 소강상태를 맞기는 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 “제가 할머니 손에 컸습니다. 할머니들이 뭘 쉽게 버리질 못하시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도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갖고 있으니까요.”
뭐든 허투루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고 정리해 필요할 때 요긴하게 꺼내쓰곤 했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얼굴에 잠시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문 지점장에게 가장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도 초등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기념우표를 발행했을 때 그 추운 겨울날 새벽같이 우체국으로 달려가 어른들 사이에 끼어 서 있었던 것.
“당시만 해도 우표수집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 앞에 몰려 있었어요. 당시 청원경찰이 앉아서 기다리라며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가로로 휘두르던 기억이 납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으면 머리를 맞으니까 얼른 앉았죠.” 손이 곱고 볼은 빨갛게 얼었지만 간절히 원하던 우표를 몇 장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년은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수집이 주는 희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그의 ‘수집’은 본격적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수집 동호회에도 참여하고 원하는 물건을 찾아 서울도 종종 올라갔다. 경매에도 참여하고 옥션이나 이베이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흔히 우표나 화폐를 수집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호기심을 보이는 게 “돈이 많이 들겠다.”, “얼마까지 써봤냐.” 하는 것들인데 이 세속적인 호기심은 방문객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적정선을 지키는 거예요. 물론 돈이 많은 수집가들은 액수에 개의치 않지만 보통 사람들, 월급쟁이들은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아무리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대출을 받아야 한다거나 생활비를 털어야 한다면 그건 접어야죠. 뭐든 그렇지만 스스로 원칙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꼭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일정액을 꾸준히 모으는 것도 방법이에요. 제가 썼던 가장 큰 액수요? 흠, 1천만 원?(웃음)”
그의 수집방은 책상과 책장으로 사면이 빼곡하다. 칸칸이 꽂혀 있는 앨범을 펼쳐서 보여주는 그의 몸짓에서 가벼운 흥분이 느껴진다. 광대가 기쁘게 솟아오르고 ‘레’ 정도를 유지하던 그의 점잖은 목소리가 ‘미’나 ‘파’쯤으로 올라가는 걸 들으니 자신의 보물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아이 같은 순수한 기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 대한민국의 역사를 간직한 우표들
  • 1958년부터 2021년까지의 초일봉투
  • 1998년 한국은행 발행 주화세트
  • 일련번호가 같은 희귀 지폐
몰입과 힐링으로 더 행복한 삶

문경배 지점장이 가장 아끼는 수집품 3가지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1998년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주화세트, 두 번째는 1958년부터 2021년까지 소장하고 있는 초일봉투(우표가 발행된 첫날에 일부인이 찍힌 봉투류), 세 번째는 일련번호가 똑같은 지폐 세트가 그것이다.
“주화세트는 IMF가 터지고 나서 딱 8천 개만 제작됐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매우 큽니다. 초일봉투도 마찬가지인데 중간에 빠지는 연도들을 어떻게든 구해서 다 채워 넣었지요. 일련번호가 같은 희귀 지폐들도 경매로 구입한 것입니다.”
소장품을 다루는 그의 손길이 애틋하고 어여쁘다. 시간과 애정을 쏟아 부은 물건이 생명력을 얻는 순간이다. 그런데 문 지점장의 이런 모습을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옆에 또 있다. 바로 아내 박수정 씨다(군산지점 팀장).
“아내는 저의 취미생활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평생을 맞벌이로, 워킹맘으로 일해온 덕분에 제가 부담을 덜 갖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기도 했고요. 연애시절부터 한정 아이템을 구매할 때 함께 서울에 올라가서 줄도 같이 서주고 우표 전시회를 구경하면서 데이트도 하곤 했지요. 제가 구매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 번도 타박을 한 적이 없어요.”
박수정 팀장이 남편의 얘기에 살짝 귀띔한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살아온 남편의 유일한 취미생활을 응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이다.
문경배 지점장은 수집의 즐거움은 ‘자기만족’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표 수집가로서 국내전시회, 해외전시회에서 꽤 큰상도 타봤지만 결국 자신이 이토록 수집에 몰입하는 이유는 퇴근 후 방에 오롯이 앉아 모은 수집품들을 정리하고 다시 배치하면서 얻는 기쁨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집품의 종류가 늘어나는 이유는 한 품목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다른 품목으로 관심이 확장되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모은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꺼내 볼 때면 당시의 기억, 추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제게 수집품들은 그 모든 순간을 다시 소환하는 마법 같은 존재예요.”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취미도 바뀌었다. 더 자극적이고 빠른 것에 반응하는 이 시대에 문경배 지점장의 취미는 어쩌면 조금 고루한 것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몰입을 선사해주는 ‘수집’의 가치는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시간을 조금 더디게 잡아주는 기적을 선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