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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맨틱한 봄꽃 여행을 꿈꾸다
    프랑스 ‘지베르니’

    • 정리 편집실
  • 많은 사람이 프랑스 여행하면 멋진 도시 풍경, 유명한 예술작품을 떠올린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의외로 로맨틱한 여행지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지베르니에서 감성 가득한 봄 여행 기분을 만끽해 보자.
여름날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
이곳에 오면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넉넉하게 주세요

프랑스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장소들이 많지만, 한여름 관광 시즌에만 관심을 모은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길어봐야 보름 정도 단기간 여행을 계획하고 프랑스에 가므로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행 좀 해본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어떻게든 피하고, 도처에 널려 있는 관광버스들의 그림자조차 멀리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곤 한다. 필자도 그런 노력 끝에 최고로 만족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으니, 거기는 바로 파리에서 76km 정도 떨어진 한적한 도시 지베르니(Giverny)다.
이곳엔 프랑스가 낳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집과 정원이 있다. 이곳은 모네의 집 앞에 있는 ‘꽃의 정원’과 길 건너편의 ‘물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정원을 여는 7개월 동안 얼마든지 방문할 수 있다.
이곳은 시끌벅적하고 틀에 박힌 투어 상품은 잊어버리고 마치 고독한 순례자처럼 찾아봐야 한다. 자동차로는 파리에서 1시간 정도 가면 되고,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농(Vernon)까지 가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도 된다.
되도록 아침 일찍 도착해서 비어 있는 벤치를 하나 찾은 다음 조용히 눈을 감고 신선한 바람과 공기를 온몸으로 느껴보기 바란다. 이렇게 해야만 지베르니의 아름다움 속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모네의 손길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
눈에 담는 모든 것이 작품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갖 꽃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정원과 아름다운 수련이 둥실 떠 있는 호수는 모네가 그림을 250여 점 그리던 때를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떠올려볼 수 있게 한다. 사진작가인 엘리자베스 머레이는 이곳에 올 때마다 하루를 온전히 투자함으로써 지베르니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모네의 열정적인 삶을 회상하는 책까지 낼 수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곳에 오면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넉넉하게 주세요. 느긋해져야 해요. 그래야 이곳의 정신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30년 전 처음으로 지베르니를 찾은 후 이곳의 경관에 완전히 반해서 캘리포니아 카멜에서 원예가로 활동하던 삶을 접어두고 노르망디로 이주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자신의 원예조경 기술을 발휘하여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지베르니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마다 늦봄이나 초가을에 모네의 정원을 찾아 익숙한 꽃들과 눈인사를 나눈 후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연다. 그녀가 특히 사랑하는 것은 가을의 지베르니로,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오면 황금색 해바라기와 진홍색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에 흠뻑 빠지게 된다고 한다.
“계절마다 색깔과 전경이 달라지게 만든 것 또한 모네가 남긴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기획은 완벽하게 성공했어요.”

  • 인상주의 화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모네의 정원
  • 모네의 그림들
순간순간 달라지는 자연의 색채에 매료되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사조로,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 변화를 통해 자연을 묘사하고 순간적인 색의 효과를 이용해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했다. 모네는 인상주의의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1883년 아이 여덟 명이 포함된 모네의 가족은 예전부터 사랑해온 지베르니에 농장을 구입해서 터를 잡았다. 모네는 여기서 43년 동안 살면서 자신이 위대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해박하고 재능 있는 정원사라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했다. 다른 화가들이 실내 공간에서 정지된 사물을 그리는 동안 모네는 바깥으로 나가 순간순간 달라지는 자연의 색채에 매료되어 정원 일에 매달렸다. 모네는 일본의 판화를 다량 수집하다가 영감을 얻어 ‘물의 정원’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 땅을 파서 인공호수를 만든 다음 큰 다리 하나와 작은 다리 여러 개를 설치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버드나무와 대나무와 등나무 옆을 천천히 걸어가서 여름 내내 피어 있는 수련을 그리고, 또 그렸다.

  • 인상주의 화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모네의 정원
당신도 인위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땅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영혼의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이 또한 여행이 가져다주는
기쁨의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입에 털어 넣는 게 아니라 천천히 홀짝이며 음미하라

모네는 지베르니의 자연 풍경에 더해서 세찬 비와 뿌연 안개와 짙은 구름이 뒤덮었다가 바로 쨍한 해가 나타나는 이곳 특유의 하늘도 고려했다. 따라서 모네의 지베르니는 그저 예쁜 꽃이 피는 정원이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해서 기억하는 모든 것의 혼합물이었다.
그러니 지베르니는 한입에 몽땅 털어 넣는 장소가 아니라 천천히 홀짝이며 음미하는 곳이어야 한다. 어떤 장소의 화려한 외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엘리자베스 머레이의 충고를 귀담아듣기 바란다.
“마음을 움직이는 풍경을 보면, 제일 먼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간단하게라도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그렇게 하는 동안 그 땅과 하늘에 담겨 있는 의미들과 소통하면서 온전히 그곳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아담한 벤치건,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장미넝쿨이건, 아니면 관목에 매달려 있는 이파리건 무엇이건 간에 지베르니에서는 문득 스케치하고 싶은 장면이 반드시 눈에 들어올 것이다.
당신도 인위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땅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영혼의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이 또한 여행이 가져다주는 기쁨의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모네의 집
  • 지베르니 마을
자료 제공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문학 기행(마르시아 드상티스, 홍익출판사, 2019)

프랑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멋과 문화의 북부 이야기를 담았다. 파리를 비롯해 노르망디, 생말로, 노앙, 스트라스부르, 부르고뉴 등 북부 여행을 가장 뜨겁고 지적인 경험으로 이끈다.